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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팟에 관한 이야기 (1)

아키라 : 비의 거리라는 이름은 뭔가 유래가 있는 걸까요? 역시 비가 많이 와서요?

네로 : 유래가 있긴 해. 별로 좋은 얘긴 아니지만.
옛날에 이 주변 일대가 심한 물 부족을 겪었을 때, 국왕의 의뢰로 여러 마법사들이 마력을 합쳐서 비를 불렀어. 
당시에도 이유없이 마법사를 싫어했으니 고육지책이었지만 말야. 마법은 성공했고, 거리는 원래대로 돌아갔어.

아키라 : ....그 얘기가 사실이라면 이 거리는 좀더 마법사에게 호의적일 것 같은데요....

네로 : 바로 그거야. 
국왕이 사례금을 하사했더니, 물이 부족했던 게 마법사의 자작극이 아니냐는 의심이 싹텄어. 
재판이 열렸고 비를 불렀던 마법사들은 다수결로 거리에서 추방됐어. 
인간들도, 다음엔 마법의 힘에 의지하지 않도록 물을 확보할 수 있는 수로를 마련했지. 
비로 모이는 물을 소중히 여기자는 교훈을 얻은 거리, 그게 이 비의 거리야. 

아키라 : ......뭔가 납득이 안 돼요. 마법사들은 그게 괜찮았던 거예요? 추방이라니 너무 가혹하잖아요.

네로 : 뭐, 화는 나지만. 
수로가 생겨서 우리들 마법사에게도 도움이 됐고, 얼굴은 마법으로 바꾸면 돼. 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올 수 있는 처벌이지.
그런 일을 몇 번이나 겪어 가면서 자리잡은 마법사가 많은 곳이야. 이 동쪽 나라는.




2. 스팟에 관한 이야기 (2)

네로 : 아, 현자씨. 그 쪽 길은 안돼. 멀리 돌긴 하지만 우회해서 가자.

아키라 : 네? 하지만 올 때는 이 길로 왔는데요.... 

네로 : 밤에는 이 길로 가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어. 위험해서.

아키라 : 그런가요.... 법을 지키는 사람이 많은 동네인데도 치안이 나쁜 장소가 있긴 하군요.

네로 : 치안이 나쁘달 정도는 아니지만. 여긴 특별히 룰이 있어서 아무도 안 지나가는 거야.

아키라 : .....?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란 말인가요? 
이상한 얘기지만,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다면 반대로 안전한 길인 거 아닌가요.....?

네로 : 그렇지. 
하지만, 가면 안되는 길을 지나가는 녀석이나 법전을 안 지키는 녀석은 범죄자가 틀림없다고 여겨져서 신고당해.
원래는 호객꾼 같은 걸 쫓아내기 위한 규칙이었는데. 규칙만 남아 버렸어.
그런 이유로, 저쪽 길로 갈게. 다만 저쪽은 쫓겨난 호객꾼들이 있어서 확실히 분위기가 안 좋아.
조심해. 나랑 너무 떨어져 걷지 않게.

아키라 : (뭔가 굉장히 까다로운 거리네.....)




3. 스팟의 추억 (1)

아키라 : 이 거리는 표지판이 많네요... 저 간판은 무슨 뜻인가요?

네로 : 아아...., 미안하지만 알려줄 수 없어. 관공서에 가지 않는 한.

아키라 : .......? 네로도 모른다는 말인가요?

네로 : 아니 당연히 알지. 하지만 일반인이 여행자에게 표지판의 뜻을 알려주는 건 법전에서 금지하고 있어.
설명했다가 틀리면 트러블이 생기잖아. 그래서, 물어보면 관공서에 가라고 안내해야 한다는 규칙이야.

아키라 : 음...... 이 동네 관공서, 줄 엄청 길었죠. 하지만 모르는 사이 법전을 위반하는 건 무섭고...

네로 : 아하하. 표지판의 뜻을 잘못 알았을 때 댈 좋은 핑계를 알려줄게.
'내가 봤을 때랑은 표시가 달라졌다. 분명 마법사의 소행임이 틀림없다.'

아키라 : 그럴 수가....! 마법사에게 죄를 전부 뒤집어씌우는 거예요?

네로 :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봐주고, 범인을 찾을 정도는 아닌 장난이야. 아무도 하찮은 일로 잡혀가지 않으니 합리적이잖아.

아키라 : 왠지 납득이 안 돼요.......

네로 : 작은 트러블은 그거면 다 해결돼. 마법사라는 걸 들키지 않으면 쾌적한 거리인데 말이지...




4. 스팟의 추억 (2)

네로 : 비의 거리는 주민들과 어느 정도 친해지면 인심 좋은 동네야. 
서로 경솔하게 신고하거나 하지 않고 신뢰 관계를 구축하면 다들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거든.
이사하고 싶었을 때 상담해 준 손님이나, 가게의 개점 기념일을 묻길래 대답해 줬더니 일부러 선물을 준 손님도 있었어.

아키라 : 단골 손님인가요? 그런 거리감은 좋네요.

네로 : 그렇지? 거짓말 하지 말걸 그랬어. 마음씨 좋은 신사였는데. 

아키라 : 거짓말? 개점일을 거짓말로 대답했나요?

네로 : 이 날이었지, 같은 대화를 하다가 어느 순간 그런 얘기가 됐는데, 일부러 정정하는 것도 좀 그래서... 
그랬던가요, 하고 애매하게 대답했어. 
나중에 날짜를 잘못 알았다는 걸 들켰지만 그 얘긴 서로 모른 척 하고 잘 지나갔어. 
추궁하지도 않고, 좋은 사람들이지?

아키라 : (네로도 손님도 대화에 서투른 것 같은 에피소드다....)




5. 브레이크 타임 (1)

아키라 : 동쪽 나라는 어딜 가나 자연이 풍부하네요. 

네로 : 시골 풍경이라고 하면 맞을지도 모르겠네. 
공공시설이나 귀족의 저택은 토지의 몇 할을 정원으로 만들라든가, 나무를 심으라든가 하는 세세한 법률이 있어.

아키라 : 그런 것까지 룰이 있어요?

네로 : 귀찮지만, 덕분에 경관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아름답지.

아키라 : 확실히 치유가 돼요... 네로의 가게에도 정원이 있었어요?

네로 : 있었어, 작은 정원이었지만. 야채와 과일과 허브를 조금 심었었어.


>아키라 : 자가재배 야채라니 좋네요!

네로 : 매년 키우다 보니 특별히 잘되는 해도 있고, 의외로 빠져들더라. 

아키라 : 꾸준한 작업이라 잘 하셨을 것 같아요. 네로가 직접 키운 야채도 먹어보고 싶어요! 마법관에서는 안 하나요?


>아키라 : 과일은 가게에서 썼나요?

네로 : 뭐 그랬지. 모양이 별로 예쁘지 않아서, 산딸기 같은 걸 잼으로 만들어서 디저트에 쓰고 그랬어.

아키라 : 네로의 산딸기 잼, 굉장히 맛있을 것 같아요! 다음에 꼭 먹어보고 싶어요! 마법관에서는 안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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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 : 아하하. 마법관 안뜰에 맘대로 심어도 되려나. 다들 알아서 쓰니까 괜찮나? 
뭐, 언젠가 실현되면 대접할게.

아키라 : 아싸! 기대하고 있을게요!




6. 동쪽의 나라에 대해

네로 : 규칙은 많아도 나 같은 놈한텐 동쪽 나라가 살기 좋아. 
물론 완벽하진 않고 귀찮거나 싫은 점도 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말이야. 
필요 이상으로 남에게 관심갖지 않고, 해야 할 일은 성실하게 하고, 본성은 다들 착하고.
뭐 다들 남들이랑 잘 못 어울리니까, 사람을 만날 때 규칙이 있으면 실수하지 않고 지나갈 수 있어서 안심하겠네.

아키라 : 네로도 그런가요? 얘기하기 무척 편해서,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생각은 별로 해 본적이 없는데....

네로 : 아하하, 그거 영광이군. 
현자 씨 정도는 신경쓰이지 않지만, 주위에서 너무 들이대는 건 좀 힘들지도.

아키라 : 그런가요..... 조심할게요.

네로 : 당신은 괜찮다니까! ....하지만, 그렇네, 예를 들어 당신 같은 녀석을 만났을 때.... 
이상하게 흥미가 생겨서 말을 걸고 싶어져도 이 나라에선 법률 위반이 될 수 있으니까 못 해. 말없이 배웅할 뿐이야. 
그런 건 좀 아쉬울지도 모르겠네.




7. <위대한 재앙>에 대해

아키라 : 비의 거리의 사람들은 <위대한 재앙>이 오는 밤에 어떤 모습으로 있나요?

네로 : 다른 곳에 비해 이 동네는 다들 더 겁내는 느낌이야. 그렇다고 패닉을 겪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만. 
불안을 안고 있으면서도 단단히 대비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느낌이라, 재앙이 오기 며칠 전부터 아무도 밖에 나오질 않아.
솔직히, 장사는 말이 아니야. 어쩔 수 없지만. 이 주변은 재앙을 보면 정신이 이상해진다는 미신이 있을 정도로 두려워하고 있어.

아키라 : 정말 미신일까요? <위대한 재앙>이 너무 가까워진 영향으로 세계에 이변이 일어날 정도인데.

네로 : 확실히 재앙이 오는 시기엔 강한 마력이 느껴져. 동물도 식물도 공기도 뭔가 뒤숭숭해져. 인간도 어느 정도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 

아키라 : 네로는요? 몸 상태가 나빠지고 그러진 않나요?

네로 : 나도 뭐.... 살짝 흥분하는 듯 하달까. 
화를 잘 내게 되고 감상적으로 변해서, 안절부절 진정이 안 되는 느낌이야.
개인차는 있지만 마법사는 다들 그런 느낌이야. 그러니 당신도 재앙이 올 땐 조심하라고. 우리를.




8. 스팟의 사람들

아키라 : 룰이 많은 동네지만... 좋다고 생각되는 점은 없나요?

네로 : 아니아니, 취향이 갈릴 순 있겠지만 좋은 점도 많이 있다고. 
예를 들면 나처럼 정체모를 남자한테도 깊이 캐묻지 않는 것 말야.
서쪽의 나라에 갔을 땐 지옥이었어. 눈이 마주치면 말을 걸어대서 땅을 보고 다녔는데도 말을 걸더라고.
동쪽의 나라는 다들 수줍음이 많지만, 딱 좋은 거리감이라 대하기 쉬워. 천성이 성실한 녀석들이 많기도 하고.

아키라 : 그건 알 것 같아요. 동쪽의 나라 사람들은....


>아키라 : 정직하고 성실한 것 같아요. 

네로 : 하하. 뭐 그렇겠지. 나 말고는.


>아키라 : 친절하고 상냥한 것 같아요. 

네로 : 맞아맞아. 그런 점을 이용하는 녀석도 별로 없고, 좋은 나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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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 : 그리고, 부탁드립니다 하면서 의지하면 대부분의 녀석들이 도와 줄 거야. 
가게를 열고 싶다든가, 딸에게 피아노를 사주고 싶다든가, 그런 사적인 일에도 기부금이 꽤 모이거든. 

아키라 : 그렇군요! 그건 뭔가 의외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한테 별로 관심이 없다는 인상이 있어서...

네로 : 아하하. 그런 이미지가 있긴 하지. 하지만 평소에 관계가 뜸한 만큼 다들 근본적으론 남을 돕고 싶어하는 걸지도 모르겠네.




9. 스팟에 있던 마법사

아키라 : 이 도시에서 다른 마법사를 만난 적이 있나요?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네로 : 다들 트러블을 피하니까, 마법사끼리도 정체를 밝히는 일은 거의 없어. 
하지만 있긴 있어. 나처럼 장사하는 녀석도 가끔. 

아키라 : 어떤 직업인가요?

네로 : 예를 들면 법률가. 엄청 기억력이 좋은데 마법사 같아 보이는 녀석이 몇 명 있단 말이지. 

아키라 : 마법으로 기억할 수 있나요? 편리하네요...!

네로 : 아니, 그냥 외우는 거 아닐까? 우린 시간만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관청에 근무하는 것 같진 않고, 도시의 안내인을 겸하면서 법을 잘 아는 녀석들이 있어. 여행자에게 고용되어서 같이 행동하는 거야.

아키라 : 그렇군요. 모르는 새에 법률을 위반하지 않도록 말이군요.

네로 : 맞아맞아. 하지만 마법사는 외형이 변하지 않으니까 말야. 계속 한대도 기껏해야 10년이나 20년 정도 아닐까. 
둘이 조를 짜서 수십 년마다 교대로 활동하는 녀석들도 본 적 있어.

아키라 : 숨기고 일하는 건 힘들겠네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 이 도시에 계속 사는 건 매력이 있기 때문이겠죠.

네로 : 동쪽의 나라 사람 간 거리감이라는 건 독특하거든. 한번 맞는다고 느끼면 다른 데서는 못 살아.




10. 네로의 작은 꿈

네로 : 비의 거리는 살기엔 좋아도, 마법사가 환영받지 못하는 지역이라 오래 머무를 수 없다는 게 여러운 점일지도 몰라.
나이를 안 먹는다는 게 알려지면 주변에 왠지 소문이 퍼져서 손님이 점점 덜 찾아온다고.

아키라 : 확실히, 마법사라는 걸 숨겨야 할 경우엔 장수하는 게 불리할 수도 있겠네요.

네로 : 모습을 바꾸거나, 만났던 사람의 기억을 지우거나 하는 녀석도 있는 것 같지만 말야.
그러려면 마력과 기력이 드니까 나는 가게의 위치를 몇십 년에 한 번씩 바꾸는 방법을 써.

아키라 : 힘들 것 같아요....

네로 : 이사 자체는 귀찮은 게 다라서 괜찮지만, 이동할 거란 걸 아니까 가게 단장 같은 것엔 무리할 수가 없어. 
번창해도 별로 큰 가게로 만들 수도 없고. 
샤일록은 신경 안 쓰고 정착해 있으니까, 가게 인테리어에도 원하는 대로 신경쓸 수 있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아키라 : 요리만큼 인테리어에도 신경쓴 네로의 가게도 언젠가 가보고 싶어요.

네로 : 고마운 말을 해 주네, 현자씨. 마법관의 식당,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마법으로 확 바꿔버릴까?




11. 네로에 대한 인상 (1)

아키라 : 파우스트가 보기에 네로는 어떤 느낌인가요?

파우스트 : 네로 말인가.... 나도 그 녀석도 동쪽의 마법사답다고 할까. 서로가 서로한테 개입하지 않으니 마법관에 함께 있어도 지내기 편하긴 해.

아키라 : 확실히 네로는 간섭하는 느낌이 전혀 없죠. 하지만 세심하고...

파우스트 : 그렇지. 이래저래 아이들도 친절하게 돌보고 있어. 지식도 풍부하고, 지도하는 방식에도 강요가 없지. 
언동이나 마력의 느낌상 나보다 나이도 많은 것 같으니, 네로가 선생 역을 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아키라 : 하지만 파우스트가 선생님으로서 잘 하고 있기도 하고, 네로한테 그럴 의향이 있을지 생각해보면, 좀....

파우스트 : .........
나는 먼저 현자의 마법사가 된 것뿐이니 언젠가는 역할을 교대해도 되겠냐고 물은 적이 있어.

아키라 : 네로가 뭐라고 하던가요?

파우스트 : '난 책임감이 없어서 무리야' 라고.

아키라 : 그렇군요.....

파우스트 : 나도 딱히 없는데 말이야.




12. 스팟의 인상 (1)

아키라 : 비의 거리라길래 좀더 어두침침하지 않을까 했는데, 이 동네는 비가 와도 왠지 상쾌하네요.

파우스트 : 산맥에서 오는 비는 맑고, 비구름이 옅어서 비가 와도 그렇게 어두워지지 않아. 그 때문이 아닐까.

아키라 : 파우스트는 이 동네가 어떤 느낌이에요? 네로는 살기 좋다고 하던데요.

파우스트 : 비야 어찌됐든, 모든 게 인간을 위한 거리 같은 느낌이라 난 맘에 안 들어.
룰이 있으면 편리하고 쾌적할 수도 있겠지만, 친절함이 의무가 되는 건 기이해.

아키라 : 친절함이 의무가 된다고요?

파우스트 : 이 나라의 법전은 기본적으로 모두가 불쾌한 일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어.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남한테 폐가 되는 일을 당하지 않도록, 남한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타인을 배려하는 수고를 규칙에 맡기다 보니 남을 배려하는 게 규칙이 되었어. 그런 건 배려라고 생각하지 않아.
친절조차 자기 마음 가는 대로 베풀 수 없다면 아무하고도 엮이지 않고 사는 게 낫지.
남과 엮이는 걸 귀찮아하면서 누군가와 붙어 있고 싶어하다니, 동쪽의 나라 사람들답게 어중간한 곳이라고 생각해.

아키라 : (사람을 싫어해서 은거했던 파우스트가 말하니 설득력이 있군....)




13. 위험한 장소

히스클리프 : 동쪽 나라는 폭동이나 큰 사건을 일으킬 만큼 혈기 넘치는 사람들이 없는 대신 사기가 많다고 들었어요.

아키라 : 그래요? 동쪽 나라 사람들은 경계심이 강한 것 같았는데 조금 의외네요.

히스클리프 : 낯을 가리는 성품인 만큼, 한 번 마음을 준 상대는 의심하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규칙만 지키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서 오히려 이용하기 쉽기도 한 것 같고요.
저희 집도 스승님에게 한 번 속았었네요.

아키라 : 히스클리프와 시노의 스승님이죠... 두 사람에게 마법을 가르치겠다고 자청했는데 사실은 마력이 약했다면서요.

히스클리프 : 맞아요. 부모님께서 수업료를 지불하셨는데, 마법관에서 다른 사람들이 지적할 때까지 속고 있었어요.
다른 곳에서도 국왕의 보증이 있다거나, 수도에서 유명하다거나, 오즈의 제자라는 식으로 얘기했던 것 같아요. 

아키라 : 오즈의 제자요.....

히스클리프 : 아하하. 진짜 오즈와 진짜 오즈의 제자를 만난 지금이라면 거짓말이란 걸 금방 알아챘을 텐데 말이에요.




14. 스팟에서 한 발견

시노 : 현자, 이것 좀 봐 줘. 

아키라 : 깃발....? 귀엽네요. 횡단보도를 건널 때 쓰는 것 같아요.

시노 : 재밌는 거야.


-시노는 그렇게 말하고는 길가에 비치된 상자에서 작은 깃발을 뽑아 팔랑팔랑 흔들어 보였다.


거리의 사람들 : ..........


-그러자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신경 쓰인다는 듯 이쪽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몇 사람이 이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거리의 사람 : 여행자 분이세요? 길을 잃으셨으면 안내해 드릴까요.

시노 : 그치? 깃발을 흔들면 다들 다가온다고.

거리의 사람 : ......뭔가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시노 : 아니, 너희가 말을 거는 게 재밌어서 깃발을 흔들어 본 것뿐이야.

거리의 사람 : 그건 위법 행위예요...... 고의라면 신고할 일이지만, 어린애가 한 일이니 이번엔 봐줄게요.

시노 : 이봐, 누가 어린애야....으으읍.

아키라 : 가, 감사합니다....! 죄송해요, 일행이 좀 호기심이 많아서.....

시노 : 놔, 현자. 뭐야, 볼일이 있으면 되는 거지. 블랑셰 령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거리의 사람 : 블랑셰? 여기서 꽤 먼데..... 둘이서 가는 거니? 그런 가벼운 옷차림으로?

아키라 : (이 마을 사람들도 얘기해 보면 친절하구나.... 어쩐지 네로 같은 거리네....)




15. 네로에 대한 인상 (2)

아키라 : 시노는 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시노 : 밥이 맛있어. 
그리고, '네 몫은 이제 없어' 라는 말을 안 해.

아키라 : 식사에 있어서 배려해 주는 점을 좋아하는군요.

시노 : 밥은 중요하잖아.
네 몫은 이제 없다는 말을 다른 데서는 많이 들었지만 네로는 안 하고, 나도 요즘 '한 그릇 더' 라는 말을 안 하게 됐어.
왜 그런가 했는데, 내 접시의 식사량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어. 
내 밥 많이 담았어? 라고 물었더니 '네가 매번 부족하다길래 맞춰서 조절하고 있어' 라고 해서....
쓸 만한 남자라고 생각했어.

아키라 : 세심하네요, 네로.... 요리사의 신념도 느껴져요. 

시노 : 그렇지. 믿고 있어.




16. 스팟의 추억 (3)

파우스트 : 법전을 구하러 비의 거리에 온 적이 있어. 동쪽의 나라는 그 때부터 규칙이 많았으니까.
수백 년 전이지만 그 때 이미 법전이 30권 정도 있어서, 일단 나도 외우긴 했지만...

아키라 : 법전 30권을 다요....?!

파우스트 : 대부분은 말이지. 외우는 중에도 추가나 개정이 몇 번이나 있어서 전혀 따라잡지 못했어.
지금은 벌써 100권이 넘어서 아무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 할걸.

아키라 : 파우스트는 성실하군요....


>아키라 : 사실은 다 기억할 것 같아요.

파우스트 : 그럴 리 없잖아. 이 나라에서 사는 데엔 요령이 있어. 남과 필요 이상으로 엮이지 않는 거야.
그러면 법률의 대부분을 지킬 수 있기도 하고, 단속 자체도 그리 심하진 않아. 
주민들도 트러블을 피하고 싶어해서, 웬만큼 피해를 입지 않는 한 일부러 제보하는 자는 많지 않기도 하고.

아키라 : 마치 서로 깊은 관계가 되지 않도록 살고 있는 듯한 나라군요... 조금 쓸쓸한 것 같기도 해요.

파우스트 : 그러는 게 더 살기 좋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어. 물론 나도 그 중 한 명이고.


>아키라 : 기념일을 세세하게 기억해 줄 것 같아요.

파우스트 : 기념일이라니 뭐지. 나라나 도시가 생긴 날이라든가 무르의 연구가 발표된 날 같은 건가.

아키라 : 그게 아니라 연인의 생일이라든가, 고백한 날이라든가, 처음 데이트한 날이라든가, 결혼한 날 같은 거요.

파우스트 : 그런 상대가 있었던 적이 없어서 모른다만...
상대가 연인이라면 특별한 날이겠지. 누구나 기억하는 것 아닌가?
-


17. 즐거운 장소

시노 : 현자. 저쪽의 광장, 공원이래.

아키라 : 정말이네. 아이가 웃으면서 뛰어다니고 있어요...!

시노 : 이 거리에 온 뒤로 저런 웃음소리는 처음 들었어.

거리의 아이 : 형! 게임할 사람이 부족한데 같이 할래?

시노 : 말을 걸었어... 너, 모르는 녀석한테 놀자고 하면 혼나는 거 아냐?

거리의 아이 : 여기선 다같이 놀아야 돼! 웃지 않는 사람도 법률 위반이야.

시노 : 강요당하는 건 맘에 안 들지만, 좋아. 끼어주지.

거리의 아이 : 신난다! 이쪽이야! 규칙 알려줄게!

아키라 : (어른도 아이도 다들 즐거워 보여. 이 동네에 이렇게 밝은 곳이 있다니, 조금 안심되네...)
어, 어디서 종소리가...

시노 : 나 왔어.

현자 : 시노. 벌써 왔어요?

시노 : 놀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아. 5분 안에 여길 떠나지 않으면 잡혀간대.

거리의 관리 : 광장 출입을 통제합니다. 신속히 퇴장해 주십시오.

아키라 : 앗. 광장 출입문을 닫아 버리는군요...

시노 : 역시 답답한 동네야.




18. 네로에 대한 인상 (3)

아키라 : 히스클리프는 시노와 파우스트하곤 원래 구면이었으니까, 네로만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거군요.

히스클리프 : 그렇네요... 하지만 많이 친해진 것 같아요. 처음엔 조금 무서웠지만...

아키라 : 무서웠어요? 네로가요?

히스클리프 : 네..... 저는 뭐랄까, 저 자신도 남이 말 거는 걸 어려워하는 주제에, 말을 걸기 힘든 분위기인 사람도 어려워한달까...

아키라 : 아..... 그건 뭔가 저도 알 것 같아요. 민폐 아닐까 싶어지니까요.

히스클리프 : 맞아요. 하지만 네로는 저보다 더 신경쓰는 사람이란 걸 최근에 점점 알게 되었어요.
서임식을 마치고 난 때쯤 네로가 말해줬어요. 서로 주의하는 성격이란 걸 아니까 필요 이상으로 신경쓰지 말자고요. 
넌 날 귀찮게 하는 타입도 아니고, 나도 널 귀찮게 하고 싶지 않다, 맘편히 지내고 싶으니 부탁한다면서요. 

아키라 : .....착하네요, 네로.....

히스클리프 : 그렇죠. 제가 이것저것 걱정하기 전에 말해 줘서 어른스럽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아마도... 제 생각이지만요.




19. 스팟의 인상 (2)

아키라자 : 히스클리프는 비의 거리에 몇 번 와 본 적이 있죠. 

히스클리프 : 네. 영주이신 아버지와 함께 국왕 폐하께 인사를 드리거나, 큰 재판이나 회의에 참석할 일이 있어서요. 
저는 마법사라서 그런 일로 도시에 들어올 땐 심사도 까다로웠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비의 거리는 마법사에게 조금 차갑다는 인상이 있어요. 법전 때문이라는 건 알지만요.

아키라 : 히스클리프가 사는 지역은 규칙이 느슨한가요?

히스클리프 : 물론 법전은 같지만, 부모님이 너그러우셔서 단속이나 처벌은 느슨한 편인 것 같아요.
블랑셰 령에서는 숲이나 광장에 모여서 얘기하는 사람들이나 노는 아이들을 보는 게 좋았는데...
이 거리에선 그런 풍경을 전혀 볼 수 없어서 조금 무섭다고 할까요....




20. 브레이크 타임 (2)

브래들리 : 하아..... 보이는 놈들은 죄다 조용하고, 계속 비나 오고, 칙칙한 동네군... 감옥보다 따분해.

아키라 : 브래들리는 감옥에 있었던 적이 있죠... 인간의 감옥과는 또 다른가요?

브래들리 : 글쎄. 비슷한 것 같긴 하지만, 간수가 오면 발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욕할 수 있었으니까 여기보단 낫지.
고개 숙이고 걷는 여자나 생기없는 아저씨한테 야유해봤자 재미없을 거 아냐...
그 녀석은 이런 동네가 맘에 들어서 정착한 건가.... 그 녀석도 은근히 따분한 데가 있군....

아키라 : 브래들리....

브래들리 : 이봐, 누군지 말 안 했으니까 지금 한 건 험담 아니다. 이르지 마.
하아..... 잠깐 기분 좀 느껴보게 말없이 걸어 볼까. 따라와, 현자.

아키라 : 아, 잠깐만요! 우산 안 쓰면 젖어요...!




21. 네로에 대한 인상 (4)

아키라 : 네로는 신비주의적인 면이 있죠. 브래들리는 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브래들리 : 응? 왜 나한테 물어봐?
나랑 그 녀석이 무슨 인연이 있는 것 같아? 역시 뭔가 좀 티가 났나? 유대감 같은 게.

아키라 : 그게.....

브래들리 : .....큰일났다, 너무 많이 말했어. 혼나겠다.
뭐, 그 녀석하고는 여기 와서 만난 참이라 서로 잘 모르는데.


>아키라 : 그렇게 말하기로 정해둔 거예요?

브래들리 : 바보자식. 너. 
들키면 무서울 테니 그만 해. 잘은 모르지만 말야. 그 녀석한테 말하지 마.


>아키라 : 비밀로 하는 건 싫지 않나요?

브래들리 : 싫어. 싫지만 뭐 어쩔 수 없잖아. 나는 죄수고 저 녀석은 착실한데.
어린애도 아니고. '친구랬잖아!' 할 사이도 아냐. 하지만 떨떠름하긴 해.


>아키라 : 친구로 보이진 않았어요.

브래들리 : .....흐음. 그랬냐.
근데 말야, 저런 타입은 의외로 나 같은 녀석을 좋아해.
의외로 나 같은 녀석과 마음이 잘 맞고, 의외로 나 같은 녀석의 말을 듣는 게 즐겁다고 여기는 거야.
-

아키라 : .....그럼 한 마디로, 네로는 어떤 사람으로 보이나요?

브래들리 : 그 녀석을 한 마디로 말하긴 어렵지.... 하지만 뭐, 편한 녀석이라고 할까.
그 녀석이 좋아해주면 불편함도 과부족도 없이 자기한테 최고로 잘 맞는 환경에서 살 수 있어. 
그 녀석은 그런 환경을 잠자코 만들어. 그래서 점점 당연한 걸로 여겨져서 점점 고마운 마음이 사라져. 
사라지면 떠나 버려. 그 녀석과 오래 어울려 지내려면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야.




22. 스팟의 인상 (3)

아키라 : 비의 거리에 와 보니 어때요, 리케?

리케 : 질서있고 절제된 좋은 동네예요. 어디든 깨끗하고 아름답고요.
하지만 길을 가는 사람과 눈이 마주쳐도 인사해 주는 경우가 없어서 놀랐어요.
그런데도 길을 잃어버리면 친절하게 알려줘요. 신기한 사람들이 사는 거리예요.

아키라 : 동쪽 나라엔 여러 가지 법률이 있어서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건 위법이 되어 버리는 것 같아요....

리케 : 나라마다 이렇게 규칙이 다르다는 것도 처음 알아서 깜짝 놀랐어요. 
제가 살던 교단 내에서도, 중앙의 나라와는 규칙이 달랐죠. 어떤 게 옳은지 정해 줬으면 좋겠어요.

아키라 : 어떤 게 옳냐니 어려운 문제네요. 사는 사람들의 기질이나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자기한테 맞는 곳을 찾아서 사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리케 : 자기한테 맞는 곳.... 제게 맞는 곳도 있을까요?

아키라 : 그런 곳이 분명 있을 거예요.

리케 : 현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결정하는 건 보류하고 여러 나라를 돌아 봐야겠어요.
비의 거리는 상냥하지만 조금 서먹서먹해서, 네로 같은 동네라고 생각해요. 
제게 안 맞는 건 아닌 것 같아요.




23. 스팟의 명물

아키라 : 비의 거리의 명물이나 특산품이 있을까요? 마법관 모두에게 줄 선물을 찾고 싶어서요.

샤일록 : 이 거리의 특산품이라면 물이겠죠. 여기는 산맥에서 오는 비나 강물이 깨끗한 지역이에요.
저도 술에 타거나 얼음으로 쓸 물을 긷기 위해 몇 번 방문한 적 있어요.

아키라 : 그랬군요. 가게에서 썼나요?

샤일록 : 아뇨, 혼자 즐기는 용도로요. 
하지만 그렇네요. 선물로 가져가면 오즈나 피가로가 저녁 반주를 할 때 좋아할 것 같군요.

아키라 : 그렇네요. 음주조(組)에게는 물이 좋을까요...?

샤일록 : 물이 좋아야 야채도 맛이 좋아요. 네로가 이 거리에 정착해서 가게를 연 것도 납득이 가네요.
서쪽의 도심부에선 오염도 문제가 되기 시작했어요. 야채 같은 건 대체로 소금이나 식초에 절여 버립니다.

아키라 : 그럼 신선한 야채도 사 가도록 해요. 샤일록, 같이 고르러 가 주실래요?

샤일록 : 물론이죠. 기꺼이.




24. 네로에 대한 인상 (5)

아키라 : 리케가 보기에 네로는 어떤 인상인가요?

리케 : 네로 말인가요? 글쎄요....
처음엔 의욕없고 불성실해 보여서, 교단에 있을 때 들었던 부덕한 자가 이런 사람일까 했어요.

아키라 : 그렇군요... 지금은 어때요?

리케 : 별로 의욕이 없다는 느낌은 변함없지만, 그러면서도 뭔가 네로 나름의 상냥함이나 신경써 주는 점 같은 걸 느끼게 되었어요.
저는 그를 존중하고 있고, 호의를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뭐랄까 네로는 네로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망설이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깊은 관계를 피하는 것 같고... 내성적인 느낌도 아닌데, 조금 별난 사람이에요. 

아키라 : ....네로의 그런 점, 역시 신경쓰이나요?

리케 : 고치길 바랄 만큼 싫은 건 아니지만.... 
저는 사도로서 사람들이 믿고 바라는 삶을 살아 왔어요. 그래서 거리를 두는 태도는 당황스러울 때가 있어요.
지금은 네로에게 배우는 게 많지만, 언젠가는 제가 네로를 이끌고 싶거든요. 좀더 저를 필요로 하고 제게 개입해 줬으면 좋겠어요.

아키라 : .....리케의 곧은 마음과 자신감이 언젠가 네로의 마음을 움직일지도 몰라요.

리케 : 네. 아직 알게 된지 얼마 안 됐으니 네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요.




25. 네로의 평판

아키라 : 브래들리. 무슨 일이에요? 왠지 기분 좋아 보여요.

브래들리 : 후훗. 뭐 그렇지.
이 근처에 있던 맛있는 가게가 갑자기 문을 닫았다고 한탄하는 소릴 들었거든. 
그 기분 안다고 말을 걸었더니 도망가 버렸지만.

아키라 : 혹시 네로의 가게 얘길까요?

브래들리 : 그야 그렇겠지. 그 녀석이 만드는 요리는 어느 나라를 가든 그렇게 자주 볼 수 있는 게 아냐.
매일 먹다 보면 고마움이 없어지지만, 막상 못 먹게 되면 꼭 먹고 싶어지는 맛이야.

아키라 : 알 것 같아요. 네로의 밥은 정말 맛있죠.

브래들리 : 잘 표현은 못하겠지만 뭐랄까, 매 끼니마다 정성스러워서 감동이지. 만드는 녀석의 성격이 잘 드러나. 
맛이 확 전해지면서, 맛있는 걸 먹었을 때만 일하는 세포가 뇌에서 한꺼번에 일하는 것 같아서 소름이 돋는달까....

아키라 : 알아요, 알아요...! 얘기하다 보니 왠지 배고파졌어요....

브래들리 : 그렇네. 오늘 일은 마무리하고 밥 먹으러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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