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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재앙이 준 기묘한 상처
1화 마나석
수일 후
카인 : 왕도의 아서 님으로부터 연락이 없네. 어떤 상태이신지… 몰래 보고 오는 게 좋을까?
샤일록 : 그만두는 게 어때요? 일단은 마법관에서 근신하라는 명을 받은 상태니까요.
카인 : 그렇지만 월식의 저택에서 의식을 치른 범인을 찾아야 하는데…
샤일록 : 물론이죠. 잠잠해질 때까지는 마법관에서 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조사를 해봐요.
카인 : 마법관에서 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조사…? 앗… 뭐야 이 엄청 두꺼운 책은! 그것도 이렇게 많이!
샤일록 : 토비카게리에 대해 조사해주세요.
카인 : 나, 책상에서 하는 일은 거북해서 말이야…
샤일록 : 알고 있답니다. 개구쟁이 씨.
스노우 : 토비카게리, 토비카게리…
화이트 : 뭐였더라…
클로에 : 열심히 생각해줘! 무르가 두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나 봐! 그치, 무르!
무르 : 그런가 봐!
스노우 : 으음… 단 것을 먹으면 기억 날 듯헌데…
화이트 : 어깨를 주물러주면 기억이 날 것 같구먼…
클로에 : 어제도 그렇게 말했잖아. 정말, 똑같은 말만 하구.
무르 : 할아버지니까!
스노우 : 할아버지 아닌걸!
화이트 : 할아버지 아닌걸!
피가로 : 마법 과학 병단의 구동장치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잖아?
샤일록 : 알아도 우리에겐 보고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중앙에게 있어선 추문일 테니까.
피가로 : 이쪽 입장에서는 대환영인데 말이야. 추문 한두 개쯤 있지 않으면 언젠가 마법사 사냥이 시작될 거야.
아키라 : 전에도 말했었죠. 무슨 의미인가요?
피가로 : 마법 과학 도구의 원동력은 마나석이야. 마나석은 마법사의 돌. 마법사의 마력 그 자체지. 지금 마법 과학 도구가 발명돼서 마나석의 소비가 늘고 있어. 조만간 마나석의 수가 부족해질 거야. 부족해졌을 때, 인간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건 서쪽 마법사들이 잘 알고 있겠지. 샤일록. 서쪽에서는 마법 생물의 남획이 일어나서 절멸 직전인 듯하던데.
샤일록 : 말씀대로예요. 과학의 발전으로 서쪽은 지금 광란의 시대가 되었으니까. 서쪽은 원래부터 모럴을 모르는 지역이었지요. 때문에 점점 불어나는 욕망을 제어할 수 없게 됐어요.
피가로 : 인간이 마법 생물을 샤냥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옛날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인간의 수가 너무 많아졌지. 게다가 마법 과학까지 발전했어. 미틸 같이 약한 아이가 공격당하면 돌이 되어버릴 거야. 그런 미래는 막고 싶어.
카인 : 우선 마법사의 신용을 올려야 해. 만악의 근원인 오웬은 어디 있는 거야?
스노우 : 어디에 있으려나.
화이트 : 가정방문을 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는 않아서 말일세.
카인 : 북쪽의 마법사에 관한 일이니까 제대로 생각해주세요. 오웬의 특징은?
스노우 : 늑대를 비롯한 짐승들과 얘기할 수 있다네. 그는 늑대 사냥꾼이었으니 말일세. 그리고 마력의 흡인이 특기지.
화이트 : 평범한 마법사라면 자연에서 힘을 얻지만 오웬은 특수하다네.
스노우 : 인간의 사념으로부터 힘을 얻지. 그러니 사람 사는 마을에서 그리 먼 곳에 있지는 않을 것 같네만…
히스클리프 : …현자님.
아키라 : 아… 무슨 일이에요?
2화 기록되는 이야기
히스클리프 : 저, 바쁘신데 죄송해요. 아까 시노가 발견했는데…
시노 : 손님이 왔어. 데리고 와도 돼?
아키라 : 손님…?
동쪽의 소년들이 데리고 온 사람은 중앙의 서기관 콕로빈. 그리고 똑부러진 분위기의 미인이었다.
콕로빈 : 오랜만입니다, 현자님. 그리고 이 사람은…
??? : 콕로빈의 부인 카나리아입니다. 저번에는 남편이 신세를 졌어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이곳에서 일을 해도 될까요?
아키라 : 마법관에서 일을 해요…?
카나리아 : 네! 이이의 얘기를 들어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요! 현자님과 마법사들 덕분에 이 세계가 구원받고 있는데 돌봐드리는 사람조차 없다고 들었거든요! 여러분이 괜찮으시다면 청소와 빨래, 그 밖의 다른 일도 도와드리겠어요!
아키라 : 아… 감사합니다!
카나리아 : 그뿐만이 아니에요. 자, 당신이 말해요.
콕로빈 : 기다려봐. 좀 더 준비를 하고…
카나리아 : 우물쭈물하지 말고. 용기를 내!
콕로빈 : …
카나리아 씨에게 떠밀린 콕로빈 씨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책과 펜을 손에 든 채, 긴장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콕로빈 : 저… 저는 서기관이라… 일어난 일을 기록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아키라 : 네…
콕로빈 : 다음 <거대한 재앙>이 올 때까지 여러분에 대한 것을 기록해도 될까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걸 성에 보고하고 싶습니다.
아키라 : 그건… 우리를 신용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콕로빈 : 아닙니다. 알리고 싶어요. 마법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식으로 세계를 구하는지. 그리고 모두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일에 곤란해하고 있는지를… 성에 있는 사람들도 거리에 있는 사람들도 모르고 있어요. 저도 그랬어요. 그래서 무서웠고… 그렇지만 마법사님들이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기록해서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전 현자님도 몇 번이나 만났었는데 어째선지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게 됐어요… 그렇지만 제대로 기록해뒀다면 모두가 기억했을 겁니다. 그분이 이곳에서 뭘 했는지를.
아키라 : 콕로빈 씨…
콕로빈 : 사실은 드라몬드 님의 제안입니다. 비밀로 해달라고 말씀하셨으니 지켜주셨으면 합니다만… 세계와 내가 위험해 처했을 때 힘이 되어준 건 마법사라고. 인간은 은혜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라신다고요.
드라몬드 씨의 얼굴을 떠올리자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렇게 인간 사이에서도 마법사들을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실이 기뻤다.
아키라 : 감사합니다… 분명 모두들 기뻐할 거라고 생각해요.
콕로빈 : 네!
카나리아 : 현자님, 마법사님. 고생이 많으시겠지만, 지지 말고 힘내주세요. 열심히 응원할 테니까!
3화 각자의 상처
콕로빈과 카나리아가 마법관에 와주자 마법사들도 활기를 되찾아갔다.
콕로빈 : 전부 기록해주겠어. 마법사는 마력을 너무 많이 쓰면 마음이 피폐해지고 무기력해…
무르 : 와아!
콕로빈 : …놀래라! 왜 놀래키는 건가요?
무르 : 놀라게 만드는 게 좋으니까.
콕로빈 : …서쪽의 마법사 무르 씨는 놀라게 만드는 걸 좋아함…
무르 : 적고 있어! 성실해!
카나리아 : 맛있어! 한 번 더 시간을 들이면 이렇게 맛있어지는 거네요.
네로 : 참고가 됐다면 다행이야. 그럼 난 이만…
카나리아 : 네로 씨, 앞으로도 요리를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당신이 괜찮으시다면.
네로 : …
카나리아 : 저는 요리가 특기가 아니라 도와주시면 무척 기쁠 거예요.
네로 : 그럼… 가끔씩…
카나리아 : 네네! 고마워요!
네로 : 하하… 별말씀을.
시노 : 아직도 히스의 기묘한 상처가 뭔지 모르는 거야?
히스클리프 : 말하지마… 점점 불안해진단 말이야.
카인 : 아프지 않은 거면 좋겠네. 샤일록은 힘들어 보였어. 만지기 전까지 안 보이는 것도 불편하지만.
시노 : 어떤 거면 되는 거야.
히스클리프 : 응… 재채기를 하면 날아가는 건 좀 재밌을 거 같아.
브래들리 : 너 이 자식.
히스클리프 : …이, 있었구나.
브래들리 : 뭐가 재밌을 거 같다냐. 노는 거 아니라고.
시노 : 진지하게 날아가는 거야?
브래들리 : 아아!?
카인 : 위협하지 마, 브래들리.
브래들리 : 애초에 네놈들은… 엣취!!
시노 : …사라졌어.
히스클리프 : 역시, 조금 재밌어 보여.
리케 : 죄송해요! 미틸이랑 민들레 홀씨로 놀고 있었어요!
미틸 : 이쪽으로 날아왔나요?
카인 : 아냐, 잘했어.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새로운 상처를 봤다.
아키라 : 한밤중에 눈이 떠져 버렸네… 홍차 한잔 마시고 자자… 어라…? 이게 뭐지…?
달빛이 비치는 복도에 환영 같은 무언가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연보랏빛 꽃잎이었다. 그렇지만 곧바로 사라졌다.
아키라 : 아… 이번엔 눈이네…
팔랑팔랑 흩날리던 꽃잎은 어느샌가 가루눈으로 변해있었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쌓일 새도 없이 사라졌다. 파도 끝에 생기는 거품과도 같이 생기자마자 사라져갔다. 나는 환상적인 풍경을 쫓아가기로 했다. 그것은 계단 위로부터 흘러오고 있었다.
아키라 : 저 방의 문에서 나오고 있어… 저 방은 분명… 파우스트의 방…
레녹스 : 현자님.
4화 흘러나오는 꿈
아키라 : 레녹스…
레녹스 : 이런 늦은 밤에 무슨 일이신가요. 이 눈은 도대체…
아키라 : 파우스트의 방문 틈새로 흘러나온 것 같아요.
레녹스 : 파우스트 님의…
레녹스는 입을 다물었다. 팔랑이는 가루눈이 붉게 빛나는 불티로 변해갔다. 불티는 옮겨붙지 않고 조용히 사라져갔다. 그렇지만 걱정됐다.
아키라 : …이건 뭔가의 마법인가요? 레녹스는 본 적이 있나요?
레녹스 : 아뇨…
나는 망설이다 노크했다.
아키라 : 파우스트… 파우스트.
대답이 없었다. 어두운 달밤에 불티의 붉은 빛만이 강해져 갔다.
레녹스 : 결계가 쳐져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파우스트 님은 조심성이 많으시니까.
피가로 : 무슨 일이야, 두 사람 다.
아키라 : 피가로…
아래층에서 피가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우리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피가로는 이상을 눈치채고 눈썹을 찌푸렸다. 불은 점점 강해져 문틈 새로 혓바닥을 내밀며 타오르고 있었다.
피가로 : 물러서. 문을 열 거야.
손잡이를 잡으며, 피가로는 엄숙하게 주문을 외웠다.
피가로 : 《ポッシデオ》
공기가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퍼지며 손잡이가 돌아갔다.
아키라 : 아…
문을 열자 눈에 들어온 광경에 그만 말을 잃고 말았다. 파우스트가 잠들어있는 침대가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상한 환영이 방안에서 북적대며 파우스트를 맴돌고 있었다. 창가에는 처형대가 있는 언덕의 풍경. 천장에는 아서와 닮은 소년. 피가로와 레녹스도 있었다. 모두가 경모하던, 온화하고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는 파우스트의 모습도. 책형에 처해 업화에 불타는 그도.
레녹스 : 이건… 파우스트 님이 꾸고 있는 꿈이야…
아키라 : 파우스트가 꾸고 있는 꿈…
파우스트 : …
파우스트가 작게 몸을 뒤척였다. 숨죽이고 서 있는 우리에게 피가로가 고했다.
피가로 : 나가자. 눈을 뜨기 전에.
파우스트의 방을 나온 우리는 정원을 걸었다. 조금 전에 본 광경이 눈에 새겨져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레녹스 : …저건 파우스트 님의, <거대한 재앙>이 새긴 기묘한 상처일까요…
피가로 : 아마도. 그 애가 가장 싫어할 만한 증상이야.
아키라 : 파우스트의 방에서 봤던 환상은 파우스트의 과거인가요…?
피가로 : 과거뿐만이 아니라 바라던 꿈도 섞여 있지 않으려나. 나는 마지막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어.
아키라 : 어째서…
5화 배신당한 영광
피가로 : 전선을 이탈했어. 그 탓에 파우스트가 원망하고 있지. 겁이 났던 게 아니야. 승리는 눈앞에 있었어. 인간인 알렉과 마법사인 파우스트를 중심으로 새로운 이상의 나라가 태어날 것이라고 모두가 믿었지. 설마 측근이 알렉을 부추겨 마법사들을 처형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아키라 : 처형…
레녹스 : 물론 저항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파우스트 님은 믿고 계셨어요. 알렉 님이 실행에 옮기지는 않을 거라고… 불이 붙는 그 순간까지도…
아키라 : …
레녹스 : 그날의 일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저렇게 선명하게 꿈을 꾸고 계실 줄이야… 그 괴로움이 얼마나 깊을지… 저는 상상할 수조차 없어요.
피가로 : 파우스트가 자신의 기묘한 상처의 증상을 알게 되면 마법관을 나가겠다고 말하겠지. 누구에게나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어. 그런데 그게 무의식중에 흘러나와서야… 지금보다 강한 결계를 치면 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하면서까지 남아있을 필요도 없어. 조용히 있으면 꿈속의 일이지. 그는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판단은 현자님께 맡길게.
아키라 : …레녹스도 그걸로 괜찮은 건가요?
레녹스 : …저는 전해드리길 바랍니다. 설령 파우스트 님이 마법관을 나가신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그분께서 믿을 수 있는 걸 빼앗고 싶지 않아.
아키라 : …
하룻밤 생각한 끝에 파우스트에게 알리기로 했다.
파우스트 : …
파우스트는 놀란 얼굴을 하고,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화를 내지도 도망치지도 않고, 견디듯이 조용히.
아키라 : …파우스트가 이곳에 남아준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당신이 상처받지 않을 방법을 생각하겠습니다. 강요할 수는 없지만, 부디 생각해주세요.
파우스트 : …왜 나에게 얘기한 거야. 가만히 있으면 몰랐을 수도 있잖아.
아키라 : 파우스트가 이곳에 남아주길 바라요. 그렇지만…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 알려지게 되는 건, 누구라도 싫을 거예요. 게다가 당신을 속이면서 당신의 지식이나 마력에 의지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믿어주길 바랐어요… 신용을 얻은 다음에 이곳에 남아주길 바라는 거예요.
파우스트 : …알았어. 이곳에 남도록 하지.
아키라 : 파우스트…
그는 시선을 내린 채 입을 다물었다.
파우스트 : …그렇지만 꿈이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강한 결계를 치고 싶어. 이를 위한 매개를 가지러 동쪽에 갈 거야. 잠깐 자리를 비우지. 괜찮나.
아키라 : 물론이죠… 고마워요, 파우스트.
파우스트 : 아니…
레녹스 : 파우스트 님. 저도 동행하게 해주세요.
6화 눈동자 깊은 곳의 바람
아키라 : 레녹스…
레녹스 : 경호원 정도는 되겠죠. 부탁드립니다.
파우스트는 복잡한 듯 보였다. 그렇지만 불쾌하게 노려보는 것이 아니라 작게 숨을 뱉었다.
파우스트 : 네게 해줄 수 있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어.
레녹스 : 무언가를 바란 적 없습니다. 당신의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
파우스트 : …그때부터 계속 나를 찾고 있었던 건가.
레녹스 : 각지를 방랑했습니다. 파우스트 님의 스승이셨던 피가로 님을 만난 후에는 계속 남쪽에 있었지만.
파우스트 : 그런가… 미안해.
레녹스가 자연스럽게 웃었다.
레녹스 : 무슨 말씀이세요. 이렇게 다시 만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야말로 땅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파우스트 : 매개를 찾으러 가는 것뿐이야. 학생을 버리고 도망가지 않아. 피가로도 아니고.
레녹스 : 피가로 님도 걱정하셨어요.
파우스트 : 어떠려나.
두 사람이 대화하는 걸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늘 사람을 잘못 봤다고 주장하던 파우스트가 레녹스를 받아들였다. 방안을 가득 메웠던 그의 꿈이 아주 조금 가벼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떠날 때, 파우스트가 돌아봤다.
파우스트 : 현자.
아키라 : 네…
파우스트 : 나도 옛날에 어떤 인간에게 신용 받고 싶었다. 그리고 속았지. 너도 속을지도 몰라. 내가 이대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잖아.
파우스트가 비꼬듯이 말했다. 그렇지만 눈빛은 절대로 신랄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아키라 :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는… 당신이 이곳에 돌아올 거라고 믿고 기다릴 거예요.
파우스트 : …
아키라 : 다녀오세요. 파우스트.
파우스트 : 흥…
파우스트가 로비를 빠져나갔다. 그가 어떤 말을 하려 했는지, 어떤 말을 원했는지… 내가 잘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본 평온하게 미소짓던 파우스트의 모습을 떠올리자 이게 쓸쓸한 이별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레녹스가 가볍게 인사하며 그의 뒤를 쫓아갔다. 이렇게 두 사람은 마법관을 나갔다.
다음날, 루틸네에게서 중앙의 수도에 가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루틸 : 복구작업 도중이기도 했고, 중앙 분들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신경 쓰여서요…
아키라 : 그렇지만 저번처럼 쫓겨나기라도 하면…
피가로 : 아직 낮이니까 괜찮아. 원래부터 남쪽 마법사들은 그다지 경계 받지도 않으니까.
미틸 : 저도 형님들과 같이 모두를 도와주고 싶어요! 그리고…
리케 : 저도 같이 갈 생각입니다.
아키라 : 리케…
리케 : 미틸이 권해주어서요… 사람들의 도움이 될지, 제 힘을 시험해보고 싶어요.
7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파트너
리케 : 교단에 돌아갈지 말지는 그 후에 생각해보겠습니다.
아키라 : 알겠습니다. 여러분,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레녹스도 있었다면 더 안심됐을 텐데…
루틸 : 레노 씨는 파우스트 씨와 화해하신 거죠. 레노 씨, 기뻐 보이셨어요.
피가로 : 사이가 틀어졌던 게 아니야. 파우스트가 피했던 것뿐이지. 레노는 옛날에 파우스트의 종자였어.
미틸 : 조금 무서운 느낌이었지만, 레노 씨의 지인이라면 분명 좋은 분이시겠죠.
피가로 : 그렇네. 그럼 현자님. 다녀올게…
브래들리 : 나도 같이 가주지.
아키라 : 브래들리…
브래들리 : 복구작업을 도와주는 거잖아? 물론 감형을 위해서다. 괜찮지, 현자.
아키라 : ㄴ, 네. 물론이죠.
미틸 : 그렇게 하기 싫어했으면서…
루틸 : 역시 다들 근본은 상냥하신 거예요. 브래들리 씨, 잘 부탁드려요.
브래들리 : 그래. 잠깐 준비하고 올게. 기다려.
네로 : 흠흠~ 하룻밤 끓인 미트소스…
브래들리 : 와서 귀 좀 대봐.
네로 : 우왓!? 네놈, 갑자기 뭐야!?
브래들리 : 콧노래나 부르고 있고. 피의 요리사 네로가 정신이 빠져가지고 말이야.
네로 : 시끄럽네…
브래들리 : 맛봐도 돼?
네로 : 아직이다, 바보 자식! 무슨 일이야. 쓸데없는 얘기를 하러 온 거라면 지금 바로 후추 비를 내려주겠어.
브래들리 : 관둬, 바보! 오늘 밤은 나랑 어울려줘. 저 녀석들에겐 아무 말 하지 말고 중앙에 있는 월식의 저택으로 와.
네로 : 월식의 저택?
브래들리 : 그래. 내가 붙잡혔을 때 빼앗긴 보물이 그곳에 있어. 이 기회에 되찾고 싶어. 서쪽 놈들의 얘길 얼핏 들었는데 지금 월식의 저택은 엉망진창이라나 봐. 혼란을 틈타서 찾아올 거야.
네로 : 헛소리하지마. 손 씻었다고 했잖아!
브래들리 : 훔치는 게 아니야. 되찾는 것뿐이지.
네로 : 원래가 훔친 물건…
브래들리 : 아? 뭐냐, 네로. 네놈, 나를 거스를 생각이야? 나한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네로 : 감옥에 처넣어져서 조금이라도 갱생했나 했더니만, 전혀 안 바뀌었잖아…
브래들리 : 시끄러워. 네놈은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 되는 거야.
네로 : …
브래들리 : 부탁 좀 하자, 파트너! 알았어, 이번이 끝이야. 여길 마지막으로 가자고, 네로. 우리의 마지막 일은 내가 붙잡혀서 마무리를 못 지었으니 말이야. 월식의 저택을 털고 끝내자.
네로 : …정말 이번만인 거지.
브래들리 : 지금은 그럴 생각이야. 나는 기분이 잘 바뀌니까.
네로 : 하아… 알겠어.
브래들리 : 좋아. 이 미트소스, 먹어도 되냐?
네로 : 손대지 마, 바보 자식! 아직 더 끓여야 한다고! 네놈을 미트소스로 만들어주랴!?
브래들리 : 무섭게, 진짜…
8화 주군과 신하
미스라 : …
루틸 : 미스라 씨.
미스라 : …뭡니까?
루틸 : 낮잠 자고 계셨나요?
미스라 : 아뇨… 요즘 잠이 안 와서…
루틸 : 그런가요… 잠이 잘 오는 허브를 가져다드릴까요. 베개에 넣어두면 좋아요.
미스라 : 용건이 뭔가요?
루틸 : 아… 죄송해요. 지금부터 중앙의 수도로 갈 거예요. 혹시 미스라 씨가 괜찮으시다면 그 아이에게 맡겨두신 걸 받아올까 해서요.
미스라 : 맡겨둔 거…? 무슨 얘기입니까?
루틸 : 중앙의 수도에, 조금 야위고 영리한 아이요. 미스라 씨에게 부탁받았다는 물건을 배에 넣어놓고 있었어요.
미스라 : 하아… 모르겠는데요.
루틸 : 그러신가요…
미스라 : 당신은 늘 영문 모를 이야기만 하네요.
루틸 : …저는 기억하고 있으니까 영문 모를 이야기가 아니에요. 소중한 추억이었어요.
미스라 : 하아…
루틸 : …방해해서 죄송해요. 잠이 오면 좋겠네요. 실례하겠습니다.
미스라 : …허브라. 그녀도 좋아했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걸 잘도 마법약이랑 섞어서… 당신이 이 세상에 없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대마녀 치렛타.
루틸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콕로빈 : 루틸 씨! 저도 태워주실 수 있나요? 드라몬드 님께 보고하러 가야 해서요.
루틸 : 당연히 괜찮죠!
콕로빈 : 감사합니다!
카나리아 : 다녀오세요! 조심해요, 당신!
피가로 : 좋겠네, 콕로빈.
미틸 : 리케, 경주해요!
리케 : 네, 좋아요!
아키라 : 다녀오세요. 모두 조심하고요.
아키라 : 어라…? 지금 사람이 보인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카인 : 남쪽 마법사가 수도로 갔나 보네. 나도 가고 싶었는데 요즘 상부에 찍혀서 말이야.
히스클리프 : 카인이? 왜?
카인 : 아무 근거도 없는 트집이지. 타국의 유력귀족과 유착해서 중앙 군대의 정보를 팔고 있다나 뭐라나.
시노 : 타국의 유력귀족?
카인 : 그래. 나한텐 그런 지인이 없잖아?
시노 : 얘 아니야?
히스클리프 : 나… 나 아니려나…
카인 : 아아, 그렇네! 너 귀족 도련님이었지.
시노 : 너라고 부르지 마, 카인. 당신은 전 기사일 뿐이야. 히스가 신분이 더 높잖아.
히스클리프 : 자기는 쏙 빼고 말도 잘하지.
시노 : 하? 주군(我が君)이라고 불렀더니 부끄러워 한 건 너잖아. 나는 부르고 싶었어.
카인 : 맞아, 맞아! 충실한 신하가 된 기분이지. 나도 아서 전하를 그렇게 부른 적 있어.
히스클리프 : 아서 전하는 뭐라 하셨는데…?
카인 : 깜짝 놀란 뒤에 웃었어.
시노 : 밝지, 그 녀석은.
카인 : 그 녀석이라고 하지 마. 내 주군이라고.
히스클리프 : 둘 다 똑같아. 차 끓여올게.
카인 : 그래.
시노 : 부탁해.
히스클리프 : …이러니저러니 말은 해도 차를 끓이게 내버려 둔단 말이지. 본가였으면 하인들이 날아왔을 텐데.
카인 : 뭐라고?
히스클리프 : 하하, 아무것도 아니… …!
시노 : 왜 그래?
히스클리프 : 지금 창문 밖에 누가 있지 않았어?
9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받으며
카인 : 그렇게 말해도 나한텐 안 보이니까… …! 보였어…
히스클리프 : 어딜 가는 거야, 카인!? 검까지 들고…
카인 : 나한테 보이는 건 그놈밖에 없어!
히스클리프 : 그놈?
카인 : 오웬.
카인 : …!
아키라 : 아… 죄송해요, 노크도 안 하고 들어와서. 놀랐어요?
카인 : 그 목소리는 현자님이야?
아키라 : 네. 악수… 이제 보이나요?
카인 : 그래. 조심해. 마법관에 오웬이 왔어. 정원을 보고 올게.
아키라 : 저도 같이 갈게요!
카인 : 어디 있는 거야… 오웬! 오웬, 이리 나와!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정원의 초목이 술렁였다. 맑게 펼쳐진 하늘에 구름이 떠다니며 햇빛을 가렸다. 갑자기 카인이 걸음을 멈췄다. 큰 나무의 그림자 쪽을 확인하고, 낮게 중얼거렸다.
카인 : …저쪽이야.
카인의 말대로 나무그림자 뒤쪽에 숨어있는 인영이 보였다. 이쪽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카인 : 보고 올게. 여기서 기다려.
아키라 : 네… 저기, 오웬의 이야기도 들어주세요. 오웬은 당시의 기억이 없어요.
카인 : 그 녀석의 말을 듣고 있다간 내 머리가 이상해질 거야.
색이 다른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카인은 큰 나무 쪽으로 가까이 갔다. 카인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림자 속의 인영이 천천히 얼굴을 내밀었다. 구름이 밀려나고 햇빛이 비치자 얼굴이 보였다. 유령처럼 하얀 피부에 옅은 피색과 빛나는 금색의 눈동자. 오웬이었다. 그는 기쁜 듯이 미소짓고 있었다.
오웬 : …기사님…
카인 : 나와, 오웬…!
카인이 난폭하게 오웬의 팔을 잡아당겼다. 오웬은 겁먹은 얼굴을 하고 놀란 듯이 지면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행동을 보고 곤혹스러워하는 카인을 기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웬 : 기사님이다…
카인 : 무슨 얘길 하는 거야… 온 나라가 너를 찾고 있어! 니콜라스 단장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오웬 : 니콜라스가 말했어. 카인이 나라에서 제일 강한 기사님이라고.
카인 : …오웬?
오웬 : 착하게 있으면 기사님이 구하러 와줄 거라 생각했어. 나를 구하러 와준 거야?
카인 : 무슨 얘길 하는 거야…
카인은 망설이면서도 손을 뗐다. 그러자 오웬이 놀아달라 조르는 아이처럼 그의 손을 다시 잡았다. 햇빛을 받으며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은 이전에 본 것과는 전혀 달랐다. 천진난만한 기대가 얼굴에 가득했다.
오웬 : 어둡고 축축한 곳. 쥐랑 두더지밖에 없던 곳. 내가 있던 곳. 외로웠지만 그림책이 있었어. 반은 해져버렸지만, 기사님의 그림책이야. 나쁜 사람들을 무찌르고 곤란한 사람들을 구해줬어. 겨우 왔어. 겨우 와줬어.
10화 무구한 손
오웬은 무구한 미소를 지으며, 반짝이는 동경의 눈빛으로 카인을 올려다봤다. 그는 카인의 얼굴을 양손으로 만졌다.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카인은 피하지 않았다.
카인 : …무슨 얘기야. 안 속아. 너의 약한 척하는 연기, 슬퍼하는 척하는 연기에 몇 번이나 당했는데. 게다가 한쪽 눈까지 빼앗겼어.
말하는 사이에 초조함을 느낀 듯이 카인은 오웬의 손을 뿌리쳤다. 오웬은 상심했다. 보고 있는 나까지 슬퍼질 정도로 애처롭게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웬 : …어째서…
카인 : 기분 나쁜 연기는 그만둬! 무슨 속셈이야!?
오웬 : …내가 기사님의 눈을 빼앗았기 때문에 기사님이 화내고 있는 거야…?
카인 : 그 말 대로야! 네 왼쪽 눈은 내 거잖아!?
오웬 : …미안해요…
카인 : 미… 미안하다고…? 이봐, 진짜 어떻게 된 거야, 오웬…
오웬 : 금방 돌려줄게… 그러니까 화내지 마…
카인 : 이… 이봐…
오웬은 고개를 숙이고 망설임 없이 손가락으로 왼쪽 눈을 찔렀다.
오웬 : …읏 …으으…
오웬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카인은 당황하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카인 : 멈춰! 그러지 마…!
오웬 : …
상태가 이상하단 걸 느끼고 나도 두 사람에게 달려갔다.
아키라 : …피가 나고 있어. 치료해요, 오웬.
오웬 : …그렇지만…
나는 카인을 쳐다봤다. 카인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카인 : …지금은 화 안 났어. 치료하자.
오웬이 웃었다. 실내로 들어온 오웬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얌전하게 치료를 받았다.
시노 : 아아, 흰자에 상처가 났네. 안약을 넣어줄 테니까 이쪽 봐.
오웬 : 에.
시노 : 혀는 내밀지 않아도 돼.
오웬 : 안약은 무서운 거야?
시노 : 별거 아냐.
오웬 : 앗…!
시노 : 미안. 잘못했어.
오웬 : …안약 이제 싫어…
시노 : 약한 소리 하지 마.
시노에게 안약을 투여받는 오웬을, 히스클리프가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히스클리프 : 엄청나네… 시노가 안약을 넣어주고 있는데 저 오웬이 얌전히 있다니…
카인 :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떻게 될 거 같아…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오웬 : 기사님, 기사님.
카인 : …왜?
오웬 : 안약 노력할 테니까, 봐줘.
카인 : …
히스클리프 : 따르고 있네…
카인 : 의미를 모르겠어…
11화 금기의 의식
오웬 : 기사님, 기사님.
히스클리프 : 무… 무슨 말이라도 해줘…
카인 : 히… 힘내~ 잘한다, 착하지, 착해.
오웬 : 에헤헤… 앗…!
시노 : 미안. 또 잘못했어.
히스클리프 : 너, 평소라면 두 번은 살해당했을 거야.
오웬 : …이제 더는 싫어…
시노 : 힘내.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카인 : 장하다, 장하다. 힘내~
히스클리프 : 히… 힘내, 힘내~
뺨을 다 적시고 나서야 오웬의 점안이 끝났다.
카인 : 괜찮아?
오웬 : 응… 시노는 안약 못 넣어.
시노 : 시끄러워.
카인 : 너, 마법은 쓸 수 있어? 내 눈도 마법으로 뺏은 거야. 이제 손가락으로 찌르지 마.
오웬 : 니콜라스가 나보고 마법사랬어.
카인 : 니콜라스… 그 사람이랑 무슨 얘기 했는지 기억나? 그 사람은 왜 떨어진 거야?
오웬 : 그게… 거리가 파괴돼서.
카인 : 거리가 파괴돼서…?
오웬은 싱글싱글 웃으며 작게 끄덕였다.
카인 : 좀 더 자세히 얘기해줘.
오웬 : 응… 기억해내면, 착해?
카인 : 착해, 착해.
조잡한 칭찬이라도 오웬은 기뻐 보였다.
오웬 : 그게… 니콜라스는 마법사가 되고 싶었대. 마법사들은 숨기고 있지만, 달이 떨어지면 모두 마법사가 될 수 있어. 그러니까 달을 밀쳐낼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게 좋다고 알려줬대.
아키라 : 누가…
오웬 : 노바.
아키라 : 노바…
오웬 : 노바의 의식을 도와줬더니 거리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대. 내 책임이야. 이젠 틀렸어. 책임지고 죽겠어. 하고 뛰었어.
히스클리프 : 책임을 진다니… 그럼 그건 정말로 자살 미수였던 거야…?
시노 : <거대한 재앙>의 소환을 도와서 세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놨으면 죽고 싶어지기도 하겠지.
아키라 : 그럼 역시 오웬이 마음을 조종한 게 아니었던 거네요… 그때, 니콜라스 씨와 같이 있었던 게 지금의 오웬이라고 한다면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시노 : 지금의 오웬은 <거대한 재앙>의 기묘한 상처인 거야?
히스클리프 : 아마도… 악의와 공포의 결정체였던 오웬이 이렇게 되다니…
시노 : 지금 쪽이 좋지 않아…?
히스클리프 : 그러게…
카인 : 평소 쪽이 좋아. 나는 상대하기 힘들어…
오웬 : 기사님, 나 생각해냈어.
카인 : 착하다, 착해. 착한 일 한 김에 좀 더 생각해 내줘. 노바라니? 도대체 어떤 녀석이야?
오웬 : 그건…
카인 : 니콜라스가 뭐라고 말하지 않았어?
오웬 : …
갑자기 오웬의 표정이 변했다. 그건 전에도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어떤 상태인지 몰라 얼어 붙어있는 얼굴. 카인은 말하는 것에 열중하느라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카인 : 자, 오웬. 열심히 생각해줘. 생각해내면 많이 칭찬해줄게.
오웬 : 헤에…
오웬이 조소하며 카인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카인 : …
오웬 : 뭘 칭찬해 준다고? 기사님.
12화 정체
카인 : 너 이 자식…
아키라 : 오웬…!
차갑게 웃고 있는, 그곳에 있는 건 평소의 오웬이었다. 방을 둘러본 오웬이 무언가 말하려 했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스노우 : 현자여!
화이트 : 현자여, 기억이 났단다! 토비카게리의 정체!
히스클리프 : 스노우 님, 화이트 님.
스노우 : 오웬이 아니냐. 마법관으로 돌아왔구나.
오웬 : …
한순간의 정적 후에 오웬이 여유롭게 웃었다.
오웬 : 내가 언제 돌아오든, 내 마음이지?
카인 : 허세 부리지 마. 니콜라스가 낙하하던 때와 같다면, 너에게 조금 전의 기억은 없을 테니까.
오웬 : …조금 전이라니?
카인 : 나를 잘 따랐어.
시노 : 내가 안약을 넣어줬어.
히스클리프 : 칭찬받고 싶어 했어…
스노우 : 뭐라… 오웬의 기묘한 상처는 인격이 변하는 것인가?
화이트 : 혹은 본래의…
오웬 : 바보 같아. 좀 더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래.
카인 : 축축하고 어두운 곳이라는 건?
오웬 : …
카인 : 그림책이 있었다고 말했어. 기사가 곤란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오웬 : 모르겠는걸.
스노우 : 어딜 가느냐, 오웬!
화이트 : 그대의 협력이 필요하네! 큰일이 일어날 게야!
오웬 : 그럼 더더욱 협력할 이유가 없지. 나는 큰일이 정말 좋아.
오싹한 미소를 지으며 오웬은 턱을 당겼다.
오웬 : 비명과 사방으로 튀는 피와 공포로 세계가 이상해지면 돼.
카인 : 오웬…!
연기처럼 오웬이 사라졌다.
카인 : 젠장… 좋을 때였는데…
히스클리프 : 그래도 중요한 단서를 들을 수 있었어. 니콜라스를 추궁하면 알 수 있을 거야.
시노 : 스노우, 화이트, 토비카게리의 정체는?
스노우 : 《징조의 토비카게리》란다.
시노 : 《징조의 토비카게리》…?
화이트 : 먼 옛날에 봉인되었던 마술… 죽은 도시의 축제라네.
스노우 : 멸망한 도시의 망자들을 되살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양식으로 삼는 대규모의 소환술이지.
화이트 : 《징조의 토비카게리》는 그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새라네.
스노우 : 《징조의 토비카게리》가 나타난 시점을 생각해봤을 때, 오늘 밤에는 망자들이 되살아 날 게야.
카인 : 그럴 수가… 월식의 저택에서 행해진 건 달의 소환술이지 않았어?
스노우 : 산 제물이 아닌, 오래된 인골을 제물로 하지 않았는가. 그 탓에 변형된 것이네.
화이트 : 니콜라스도 시민을 지키는 군인이 아닌가. 살아 있는 인간을 모을 수는 없었던 것이겠지.
히스클리프 : 그렇지만 서쪽 마법사들의 얘기론 세계 각지에서 같은 의식이 행해졌다고…
시노 : 그중에는 산 제물을 쓴 놈도 있겠지. 노바라는 놈이 숨어서 선동했을지도 몰라. 스노우, 화이트. 죽은 도시의 축제를 막으려면 어떻게 하면 돼?
스노우 : 매개로 쓰인 달의 돌을 찾아야 하네.
화이트 : 달의 돌을 정화하지 않는 이상, 《징조의 토비카게리》는 실체를 갖게 되고, 망자들을 서서히 살려내기 시작할걸세.
시노 : 공을 세울 좋은 기회야. 수도로 간다.
카인 : 나도 가겠어. 아서 님께 알려드려야 해.
히스클리프 : 나도 갈게. 스노우 님과 화이트 님은?
스노우 : 곧 일몰이구먼. 해가 저물면 오즈는 마법을 쓸 수 없어.
화이트 : 오웬이 없는 이상, 미스라를 설득해야 해. 현자는 우리와 같이 미스라를 설득하러 가자꾸나.
아키라 : 알겠습니다.
스노우 : 고맙구나. 아무래도 요즘, 미스라는 기분이 안 좋은 듯해서 말이야.
화이트 : 잠이 부족해서 그런 게지. 맨날 밤이나 새고…
아키라 : 카인, 히스클리프, 시노, 부탁해요.
시노 : 갔다 올게.
히스클리프 : 현자님도 조심하세요!
카인 :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수도는 맡겨줘.
아키라 :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오늘 밤에는 망자들이 되살아난다… 스노우와 화이트의 말을 떠올리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제대로 해내야 해. 심호흡을 하고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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