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 |||||
만월에 초대받아 |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자 |
진지한 눈빛 | 누군가를 위해서 | 시작의 신호 | 꽃잎의 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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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디폴트 네임 : 마사키 아키라(真木 晶)
1화 만월에 초대받아
아키라 : 오늘 밤은 바람이 강하네……. 바람 때문에 고양이들이 여기저기서 울고 있어. 고양이 캔을 싸게 샀으니까 이따가 고양이 할머니네 집에 들르자. 쿠로랑 하나코는 참치고, 타마는 닭가슴살, 토라는 연어, 싯포 할아버지는 시니어용. 근처에 있으니까 가끔씩 돌봐주곤 하지만 어느 고양이든 개성적이고 귀여워. 그러고 보니 고양이 할머니가 말씀하셨었지, 바람이 강하게 불고 고양이들이 소란스러운 밝은 만월의 밤에는 무언가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고.
아키라 : 와……. 무척 커다란 보름달……. 평소보다 더 눈부신 빛인 거 같아. 이만큼 밝고 크면 폰으로도 예쁘게 찍을 수 있을지도. 초점을 맞추고……. 좋아.
커다란 달을 찍고, 나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맨션의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를 부르고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아키라 : 와아 달 예쁘게 찍혔어. 나중에 고양이 캔 가져다드릴 때 할머니께도 보여드려야지.
아키라 : ……어라? 뭔가 이상한데?
핸드폰을 보고 있던 고개를 들고,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엘리베이터의 인테리어가 평소와 달랐다. 덜컹덜컹 울리는 소리도 늘 듣던 소리가 아니야.
아키라 : 어떻게 된 일이지……. 맨션 공사 같은 걸 했던가…….
??? : 안녕.
아키라 : ……!?
나는 눈을 의심했다. 모자가 공중에 떠있는 걸로도 모자라 말을 걸어오다니.
??? : 어서 와, 현자님. 엘리베이터의 도착지는 제가 안내해 드리죠. 저는 서쪽의 마법사 무르. 도착하는 곳은 <거대한 재앙>으로 인해 망가져 가는 세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사랑스러운 현자님.
아키라 : 왓……!?
모자 밑으로 예의 발라 보이는 신사가 나타났다. 내가 놀라는 목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간다.
무르 : 지금부터 현자님을 조금 성가신 일에 휘말리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자, 성가신 일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가 있지요. 연애 사건, 명예와 전쟁, 가족, 친구, 복수, 보은……. 이번에는 그중에서 가장 성가신 문제! 세계를 구하는 것. 당신께서 이 일을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키라 : ……뭐, 뭐지, 이거……. 꿈인가……?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보이자 자신을 무르라고 소개한 청년이 조금 웃었다.
무르 : 곧 도착합니다. 세계도, 저도 꽤나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지만. 당신은 분명 제게 실망하시겠죠.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저는 무척 기쁠 겁니다. 총명하신 현자님, 당신과 만나는 때를 오랫동안 고대해왔습니다. 진심을 말하자면, 세계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건 귀찮으니까요. 그렇지만…… 이 세계의 진실을 당신이 찾아주길 바라요.
아키라 : 앗…….
무르가 모습을 감추자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화려한 수염의 남성 : 현자님……!
아키라 : 엣…….
화려한 수염의 남성 : 현자님이 오셨다! 마법사놈들이 소환에 성공했어!
병사 : 현자님 만세!
병사 : 만세!
아키라 : 에!? 뭔가요, 이거!?
화려한 수염의 남성 : 자자, 현자님 이쪽으로. 잘 와주셨습니다. 저는 중앙국의 마법관리대신, 드라몬드라고 합니다.
나약해 보이는 남성 : 저는 중앙국의 서기관 콕로빈입니다.
드라몬드 : 자, 현자님! 마법사들이 이곳으로 오기 전에, 중앙의 성으로 모시겠습니다.
아키라 : 에!? 저, 기다려주세요. 다들 뭘 하시는 건가요? 몰카? 신형 VR 체험?
드라몬드 : 현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현자님은 <거대한 재앙>과 싸워 이 세계를 구해주셔야 합니다.
아키라 : 싸워서 세계를 구해!? 그런 게임 비슷한 것과 우리 맨션이 제휴를 맺은 건가요? 어디서 카메라가 찍고 있는 건가……. 곤란해요, 이런 거…….
드라몬드 : 걱정하지 마십시오.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싸우는 건 마법사들이니까요.
아키라 : 마법사?
드라몬드 : 네. 그렇지만 이 자들은 고양이처럼 말을 안 듣는 녀석들이라서요. 어째서인지 옛날부터 이계에서 온 현자의 말만 듣습니다.
병사 : 드라몬드 님, 보고드릴게…….
드라몬드 : 뭐라!? 마법사들이!? 큰일이야. 그 녀석들이 오기 전에 어서 현자를 구슬려……. 크흠! 현자님과 친해지지 않으면! 현자님, 중앙 국의 성으로 서둘러 갑시다!
아키라 : 기다려주세요!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겠어요!
그들이 위협하듯 주변을 둘러싸고,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키라 : 저 RPG는 많이 안 해봐서요, 좋은 리액션을 보여드릴 수 없어요! 데려갈 거라면 다른 사람을…….
드라몬드 : 힘으로라도 모셔가겠습니다! 너희!
아키라 : ……!
그 자리에서 도망가려고 한 순간, 병사들이 칼을 뽑았다.
콕로빈 : 드라몬드 님, 너무 과한 게 아니신지…….
드라몬드 : 시끄러워! 나쁜 건 마법사들이다!
은색의 검이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진검으로 착각할 만큼 반짝이는 칼날에 나는 겁에 질려 파래졌다.
아키라 : (위험해! 이 사람들 좀 이상해!)
그 순간, 창문 너머의 하늘에서 다가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빗자루에 올라타 하늘을 나는, 두 명의 청년들이.
아키라 : (하늘을 날고 있어……!? 뭐…… 뭐야, 저거……. 창문 밖도 버츄얼 영상……?)
어딘가에 있을 조작장치를 찾기 위해 눈을 열심히 굴리고 있을 때…… 그들이 창문을 통과하여 내 눈앞에 가볍게 내려왔다. 진짜 바람을 일으키며.
아키라 : (에……?)
마법처럼 한순간에 빗자루를 없앤 그들은 내 양측에 섰다.
??? : 네가 말한 대로구나, 히스. 설마 마법관리성 놈들이 현자를 납치하러 오다니.
??? : 말했잖아. ……인간들은 우리를 신용하지 않아.
나는 놀라서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봤다. 키가 크고 용맹해 보이는 청년 쪽이 뒤돌아서 나를 봤다. 그 눈은 좌우의 색이 달랐다.
??? : 당신이 새로운 현자님이야?
아키라 : 에……?
??? : 나는 중앙의 마법사 카인. 당신을 지킬 기사이기도 해. 당신의 이름은?
아키라 : 아…… 아키라입니다…….
무심코 이름을 말하니 카인이라고 말한 청년은 입 끝을 올려 웃는 얼굴을 보였다.
카인 : 아키라 님. 잘 부탁해. 우선 이 녀석들을 어떻게든 하자.
그는 대담하게 웃고서 허리에 찬 검을 뽑았다. 다른 병사들의 검과는 격이 다른, 멋진 장식과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의 훌륭한 검이었다.
아키라 : (이…… 이 검은 진검……?)
내가 긴장하고 있을 때, 병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일어났다.
병사 : 카, 카인 기사단장…….
병사 : 카인 기사단장이다……!
드라몬드 : 에잇, 전 기사단장이다! 이제 너희 지휘관이 아니야! 카인! 대신인 나에게 검을 들이대다니, 반역죄로 처벌하겠다!
카인 : 나도 노인을 협박하고 싶진 않아. 그렇지만 우리 현자님께 이상한 짓을 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미안하지만 적당히 봐주진 않을 거야.
병사 : ……
카인 : 자자, 망설이지 마. 적의 기백에 눌리지 말라고 알려줬잖아? 침착하게 맞서. 상대가 나여도. ―자, 덤벼.
2화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자
카인 : 자자, 망설이지 마. 적의 기백에 눌리지 말라고 알려줬잖아? 침착하게 맞서. 상대가 나여도. ―자, 덤벼.
병사 : ㄴ, 네……
드라몬드 : 카인,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나! 여기 있는 병사들은 네 부하가 아니야! 호령을 하는 건 나야!
카인 : 까다롭네…….
드라몬드 : 네가 너무 대충대충인 거야! 그러니까 기사단장의 자리에서 쫓겨난 거다!
카인 : 알았어, 알았어! 아무래도 좋아. 빨리 해줘. 어서, 각하.
드라몬드 : 크흠……. 모두 가라……!
병사 : 우오오
병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카인을 향해 덤벼들었다. 갑작스러운 난투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시원시원하게 싸우는 카인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무작정 덤벼오는 병사들의 검을 가볍게 받아치며 여유롭게 쓰러트려 간다.
아키라 : (대단해……. 멋있어…….)
그 순간, 누군가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 팔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 : …….
아키라 : 저기…….
??? : 동쪽의 마법사, 히스클리프입니다. 따라와 주세요.
히스클리프라는 소년을 보고 나는 숨을 삼켰다. TV에서도 인터넷에서도 본 적 없을 만큼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정교하게 세공되어 만들어진 미술품 같았다. 내 시선에서 도망치듯이 히스클리프는 고개를 숙였다.
히스클리프 : 이쪽으로.
도망치듯이 히스클리프의 뒤를 쫓아 어둑어둑한 계단으로 향했다. 점점 불안해졌다. 내가 살던 맨션에 나선형 계단은 없었다.
아키라 : 저……. 저기, 질문해도 될까요?
계단의 중간에서 히스클리프가 어깨 넘어로 뒤돌아봤다. 선명한 눈동자는 마치 고가의 보석 같았다. 빠져들 것만 같아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히스클리프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위층에서 싸우는 카인도 피로가 심해보였다.
아키라 :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 좋아요.
이마를 짚으며 히스클리프는 괴로운 듯이 숨을 내쉬었다.
히스클리프 : ……죄송합니다……. 이제 마력이 거의 안 남아 있어요…….
아키라 : 마력……?
히스클리프 : <거대한 재앙>과의 전투가 끝난 직후라서……. ……카인도 한계…….
병사 : 놓치지 마라! 붙잡아!
히스클리프 : ……!
계단 위에서 병사들이 쫓아온다. 히스클리프는 내 손을 잡아끌며 계단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그러자 계단 아래에서도 사람들이 밀어닥쳐오고 있었다.
병사 : 협공이다! 이러면 도망치지 못하겠지!
히스클리프 : ……괜찮아요, 현자님.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아키라 : 그렇지만 안색이…….
히스클리프가 가슴에 오른손을 얹자 어느샌가 손바닥에 회중시계가 쥐여져 있었다.
아키라 : (뭐, 뭐야!? 지금 거……)
회중시계를 쥔 채로 히스클리프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히스클리프 : 《レプセヴァイヴルプ•スノス》
그 순간, 병사들은 인형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아키라 : 뭐……!?
히스클리프 : ……윽.
아키라 : 괘, 괜찮으세요!?
현기증이 난 듯이 히스클리프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작게 끄덕이며 필사적으로 일어났다.
히스클리프 : ……괜찮습니다……. 서둘러야 해요. 곧 마법이 풀릴 거에요. 서두르지 않으면, 파우스트 선생님이…….
히스클리프를 부축하면서 생각해보니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의 필사적임은 몰카 연기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병사들의 검의 날카로움도. 피로를 감추며 싸우는 카인의 진지함도.
카인 : 히스, 무사해!?
히스클리프 : ……윽, 괜찮아!
아키라 : (그렇다면……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 : 오늘 밤의 바람은 피부에 휘감기네요. 마치 일이 끝난 뒤에 매달리는 정인의 손가락같이……. 중앙 탑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카인과 히스클리프는 무사할까요. 안 돼, 한눈팔지 말아요. 두고 갈 거예요. 무르.
무르 : 지금 가!
히스클리프 : 현자님, 이쪽으로.
아키라 : 네…….
인형처럼 굳어버린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며 영문도 모른 채 히스클리프의 뒤를 따라간다. 조금만 더 가면 계단 밑으로 빠져나갈 뻔한 때, 병사의 손가락이 조금 움직였다.
히스클리프 : ……아 마법이 풀려…….
직후, 병사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사 : 현자를 붙잡아라! 어라? 없어? 어디로 간 거야!?
병사 : 바보! 네 뒤야!
병사 : 어느새!? 놓칠까보냐……!
움직이기 시작한 병사들이 우리를 에워쌌다.
3화 진지한 눈빛
그 순간, 복도의 창문에서 신기한 향의 하얀 연기가 피어났다. 와인 같이 어지러울 정도로 단 향이다. 놀라서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까지 아무도 없었을 터인 창가에 한 청년이 걸터앉아 있었다. 다정하게 웃고 있지만 어딘가 요염한 매력을 풍기고 있다. 입에 물고 있는 긴 파이프의 탓일지도.
??? : 안녕하세요.
히스클리프 : 샤일록!
??? : 못된 사람. 카인과 둘이서 무리를 하다니……. 하늘을 나는 것도 겨우였잖아요.
히스클리프 : 그렇지만 파우스트 선생님이…….
??? : 알고 있습니다. 뒤는 우리에게 맡기세요.
파랗게 질린 히스클리프의 뺨을 어루만진 청년은 그의 어깨너머로 나에게 웃어 보였다.
??? : 처음 뵙겠습니다, 현자님. 저는 서쪽의 마법사, 샤일록.
아키라 : 마법사…….
당황하는 나에게 샤일록은 고상하게 웃어주었다. 그리고는 요염한 동작으로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병사 : 마법사가 또 늘었어!
병사 : 거, 겁먹지 마! <거대한 재앙>과의 싸움으로 힘을 거의 다 썼을 거야……!
샤일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후우, 하고 파이프에서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자 하얀 연기가 떠돌면서 와인 같은 향기를 실내에 퍼트려 간다. 병사들은 취하기라도 한 듯 갑자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 했다.
병사 : 후후…… 어라……? 갑자기 신나졌어…….
병사 : 헤헤……. 따뜻해 보이는 침대다……. 이제 자자…….
순식간에 병사들은 평온한 얼굴을 하고 바닥에 픽픽 쓰러졌다. 다리를 높게 꼬며 샤일록은 파이프를 입에서 뺐다.
샤일록 : 좋은 꿈 꾸시길.
그 때, 계단 위에서 카인이 달려왔다.
카인 : 샤일록, 덕분에 살았어!
샤일록 : 달아 놓을게요. 다음에 한잔 사주셔야 해요.
카인 : 한잔이 뭐야, 밤새 어울려줄게. 현자님, 갑시다.
카인이 손을 내밀어 주었지만, 나는 바로 쫓아가지 못했다. 그의 손을 잡아도 될지 망설이며 갈 곳 없는 시선이 방황했다.
아키라 : (갑시다 라니 어디로? 이 사람들은 뭐야? 여긴 어디고?)
순간 떠오른 나의 불안을 놓치지 않은 카인이 걸음을 멈췄다. 그는 피곤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다정하고, 진지하게 끄덕였다.
카인 : 아아……. 미안해. 현자님은 이계에서 온 거였지. 그럼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일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데 따라오라는 말을 들으면 무섭지. ……그러니까…….
샤일록 : 카인, 이 세계나 현자의 역할에 대해 전부 설명할 시간은 없어요.
카인 : 알고 있어. 그렇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를 데리고 가는 건 기사가 할 일이 아니야.
카인은 조금 생각하더니 내 얼굴을 올곧게 보았다.
카인 : 아키라, 단순하게 설명할게. 우리는 당신의 힘이 필요해. 당신의 힘을 빌려줬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우리가 참패했기 때문이야. 매년 쉽게 이겼던 승부에서 완패했어. 방심한 것도 제대로 싸우지 않은 것도 아니야. 수염 아저씨들은 우리가 일을 엉터리로 했다고 생각해서 화내고 있지. 그렇지만 그런 게 아니야. 이유도 모른 채로 우리는 졌고, 동료를 절반 잃었어. 이제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당신의 힘을 빌려줬으면 좋겠어.
카인 : 물론 이건 우리가 억지를 부리는 거야. 이 세계는 당신의 세계가 아니고 당신 또한 하고 싶은 일이 있겠지. 당신에겐 거절할 권리가 있고 이건 누군가가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렇지만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이 필요해. 당신이 우리와 같이 가주고 힘을 빌려준다면 뭐든지 하겠어. 내가 표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와 성의를 보일게. 이 몸으로 예를 다해 감사에 보답하겠어. 이 맹세에 형태는 없지만, 부디 믿어줘. 우리를 믿고 우리에게 힘을 빌려주지 않겠어?
4화 누군가를 위해서
카인이 뭐라고 말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의 진지함과 성실함은 말과 눈빛으로 전해졌다. 꿈인지, 꾸며진 이야기인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그것만큼은 진심으로 다가왔다. 그의 말을 믿으면 카메라 너머에서 누군가가 비웃을지도 몰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의 말을 들어주고 싶어.
아키라 : ……힘을 빌려달라는 건 뭘 하면 되는 건가요?
히스클리프 : 선생님을…… 파우스트 선생님을 구해주세요.
아키라 : 파우스트 선생님……?
카인 : 우리의 동료야. 죽어가고 있어. 당신이 있으면 살 수 있을지도 몰라.
아키라 : 죽어가고 있다니, 어째서…….
샤일록 : 동료를 감싸주다가 중상을 입었어요.
히스클리프 : ……파우스트 선생님은 저를 돌봐주시던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이 안 계셨으면 저도 죽었을 거예요…….
죽어가는 동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붉어져 가는 히스클리프의 눈가를 보니 그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히스클리프 : 부탁드려요……. 제발 선생님을 구해주세요…….
심호흡을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키라 : 알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대답을 들은 히스클리프의 얼굴에 안도와 미소가 퍼졌다. 이렇게 웃는 아이였구나, 깜짝 놀랄 만큼 천진난만한, 순수한 웃음이었다.
히스클리프 : 감사합니다. 현자님…….
드라몬드 : 기다려라! 마법사놈들! 현자를 넘겨줄 수는 없어!
그 때, 수염 아저씨와 나약해 보이는 청년이 큰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왔다. 아저씨는 나를 보고 꾸짖듯이 고함을 내질렀다.
드라몬드 : 현자님! 속으시면 안 됩니다! 마법사는 제멋대로에 거짓말쟁이입니다! 망설임 없이 사람을 속이고, 이상한 힘으로 마음을 조종합니다! 마법사를 믿어서는 안 돼요!
나는 세 사람을 돌아봤다. 카인은 인상을 찌푸리고, 히스클리프는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샤일록만이 웃고 있었다. 고개를 비스듬히 든 채 파이프를 흔들며.
샤일록 : 저희가 정직한 자라면, 당신은 거짓말을 하신 게 되겠네요. 당신이 말씀하시는 제멋대로인 거짓말쟁이와 똑같은.
드라몬드 : 나는 나라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거다! 불성실한 너희들과는 달라!
샤일록 : 입을 다물어주세요, 드라몬드 님. 당신은 우리에게 대화를 걸 작정이신가 본데, 사실은 저희와 대화할 마음이 없으시죠. 당신의 말로부터 전해지는 건, 당신이 저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뿐. 당신은 저희가 말하는 게 사실이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고, 거짓말이라고 하면 안심하겠죠. 당신은 당신이 싫어하는 저희가 거짓말쟁이일 거라고 믿고 싶으니까. 그렇다면 진실과 거짓에 의미가 있나요?
드라몬드 : …… 에잇,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현자님! 아무튼 그자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으시면 안 됩니다! 현자님은 제가 하는 말을 들으면 됩니다! 전부 현자님을 위해 말씀드리는 거예요!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를 위한 거라고 말하지만 그저 아저씨의 말을 들으라고 할 뿐이다. 카인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거라고 말하며 나에게 부탁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카인네를 돌아봤다.
아키라 : 잘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을 따라갈게요.
5화 시작의 신호
아키라 : 잘 모르겠지만…… 여러분들을 따라갈게요.
카인 : 정말!?
히스클리프 : 괜찮으시겠어요!?
샤일록 : 둘 다, 놀라지 말아 주세요. 모처럼 현자님이 믿어주셨는데.
카인 : 기뻐하고 있는 거야. 초면인 인간인데 마법사들을 믿어주다니.
히스클리프 : 감사합니다, 현자님!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요!
드라몬드 : 무……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잘 들으세요, 마법사라는 것들은 성격이 나쁘고, 건방지고, 제멋대로에……
히스클리프 : 한 마디라도 더 해봐. 성격 나쁜 마법사가 당신을 저주할 거야.
드라몬드 : ……읏.
히스클리프 : 세계를 구하기 위해 싸운 건, 바로 그 성격 나쁘고 건방진 마법사야. 너희 같은 놈들을 지키기 위해 선생님도, 동료들도 쓰러진 거잖아!
드라몬드 : 그……, 그건…….
콕로빈 : 마, 말씀이 지나치세요, 대신.
드라몬드 : 너까지 그런 말 하지 마! 이렇게 되면 힘으로라도 너희를 눌러주지!
샤일록 : 헤에 어떻게? 다들 꿈속에 계신데요.
드라몬드 : 후후……. 바보 같은 놈. 바깥에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어. 힘이 다한 너희는 상대도 안 될 거다! 그것도 마법과학병기를 장비한 대군…….
??? : 《エアニュー•ランブル!》
아키라 : ……!?
갑자기 아저씨가 사라졌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저씨가 서 있던 장소에 아저씨의 옷과 쥐가 한 마리가 있다.
쥐 : 찍찍!
쥐의 꼬리를 들어 올리며 창문으로 들어온 한 명의 청년이 웃었다.
??? : 냐옹. 먹어버린다.
나는 놀라서 숨을 삼켰다. 나타난 사람이,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청년이었기에.
샤일록 : 어딜 갔던 건가요, 무르.
무르 : 달에게 이별을 고하고 왔지!
카인 : 달에게? 여전히 이상하구나.
나는 곤혹스러웠다. 얼굴도 이름도 똑같지만, 아까의 신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아까는 지적인 신사였는데 지금은 장난꾸러기인 들고양이 같았다.
히스클리프 : 이야기는 나중에. 다들 서둘러!
무르 : 알았어!
쥐 : 찍! 찍!
무르가 쥐를 던지자 콕로빈이 허둥거리며 받았다.
콕로빈 : 저기, 대신은……!?
샤일록 : 반나절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무르 : 현자님, 서쪽의 마법사 무르야! 현자님은 날아본 적 있어?
아키라 : 날……!? 에……!?
무르 : 자, 그럼 나랑 가자! 이리 와!
아키라 : 왓……!?
카인 : 무르!
무르 : 《エアニュー•ランブル!》
신기한 말을 무르가 입 밖에 내자, 무르의 손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빗자루가 있었다. 무르는 빗자루를 한 손에 들고, 내 손을 잡아 끌며 그대로 근처의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아키라 : ……!?
몸이 공중에 떴다. 그리고 힘차게 낙하했다.
6화 꽃잎의 파도
아키라 : 이아아아……!
차가운 밤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나는 높은 탑에서 거꾸로 떨어지고 있다. 비명을 지르는 내 눈앞에 똑같이 거꾸로 떨어지고 있는 무르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무르 : 있지있지, 죽는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건 두근두근한 느낌이야? 조마조마한 느낌이야?
카인 : 무르! 적당히 해! 현자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 거야!?
무르 : 어떻게 할래?
카인 : 나한테 묻지 마!
무르 : 알았다니까! 현자님 나를 잡아!
무르의 팔을 붙잡자 무르는 능숙하게 빗자루에 타고 순식간에 밤하늘의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바람을 가르며, 별이 가득한 하늘을 날고 있어. 겁내면서 내려다본 세계는 본 적 없는 숲과 성이 펼쳐져 있었다.
아키라 : ……어디……!?
무르 : 뭔가 잃어버렸어? 주머니는 확인해 봤고?
아키라 : 이, 일본, 도쿄는 어디인가요!?
무르 : 글쎄. 다른 데서 새 걸 찾는 게 어때? 간다!
카인 : 무르! 무리하지마! 현자님도 같이 타고 있으니까!
무르의 몸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는 새처럼 날고 있다. 뒤를 돌아보니 도쿄타워와 비슷한 타워가 어두운 세계를 반짝반짝 비추고 있다. 그들은 저기서 뛰어내린 것이다. 밤하늘을 날며 공포와 고양감에 가슴의 고동이 빨라진다. 빗자루에 올라타 하늘을 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바로 마법사.
아키라 : (설마, 진짜 마법사……!?)
카인 : ……! 조심해! 《꽃잎의 파도》야!
히스클리프 : 밤하늘 한곳에 거대한 파도 같은 꽃잎 무리가……. 이게 세계를 수복할 때 나타나는 《꽃잎의 파도》!? 이거 피하는 게 좋을까……!?
무르 : 돌파하자! 만져보고 싶지, 현자님!
아키라 : 만지는 건가요!?
카인 : 기다려기다려기다려!
샤일록 : 무르.
무르 : 괜찮아! 자! 손 뻗어봐!
아키라 : 아…….
눈앞에 밀려오는 무지개와 같이 일곱 빛깔로 반짝이는 꽃잎의 파도. 두근두근하며 손을 뻗었다. 살짝 손 끝에 닿은 순간, 반짝반짝 부서지며 마법 가루처럼 흩어져 간다.
아키라 : ……!
히스클리프 : ……아름다워…….
샤일록 : 여러분, 무사한가요?
카인 : 아아. 엄청난 광경이네…….
무르 : 아하하! 거봐, 만져보길 잘했지? 인생은 여행이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엄청난 것들로 넘쳐나고 있어.
은하에 안겨 춤을 추듯이 무수한 빛이 얽히고 그들의 웃음소리를 울려퍼지게 만든다. 목적지까지 하늘을 날아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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