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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마법사가 있는 세계


1화 아침 한때

카인 : 다들 들어봐. 현자님이 새로운 마법사 소환을 해주신대.



식당에 도착한 카인이 보고했다. 식당에는 무르와 샤일록이 있었다. 그렇지만 카인은 그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카인 : 어라? 아직 아무도 없나?


무르 : 있어! 안녕, 카인, 현자님!


카인 : 무르? 어디에 있어?


무르 : 주머니 안에!


카인 : 또 재미없는 농담이나 하고. 숨어있지 말고 나와.


무르 : 나와 있는걸? 이것보다 더 나와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나와 있어.


카인 : 아하하 바보.


아키라 : 카인… 역시 눈이 이상한 거 아닌가요?



그때 스노우와 화이트가 도착했다.



스노우 : 좋은 아침.


화이트 : 다들 좋은 아침.


샤일록 : 안녕하세요. 파우스트의 상태는… 아파.


카인 : 샤일록.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지 마.


샤일록 : 부딪쳐 온 건 그쪽이잖아요. 그것도 정면에서.


카인 : ?


샤일록 : 숙취인가요?


카인 : 아니, 눈의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러고 보니 쌍둥이 선생님도 안 보여.


스노우 : 호호호 이상한 일도 다 있구나.


화이트 : 우리는 어제 벽에 걸린 그림에서 나갈 수 없게 되었었지.


카인 : 농담이 아니야. 내 얘기는 진짜라고. 그것보다 들어줘. 현자님이 새로운 마법사를 소환해 주신대.


샤일록 : 그거 다행이네요. 현자님, 감사합니다.


무르 : 신난다! 새로운 동료!


아키라 :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여러분의 힘이 될 수 있다면.


스노우 : 고맙구나, 현자여. 그럼 점심때 쯤에 소환의식을 거행하도록 하자꾸나.


화이트 : <거대한 재앙>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가 좋겠지.



희미하게 떠 있는 달을 쳐다보며 스노우와 화이트가 말했다. 샤일록이 나에게 미소지었다.



샤일록 : 그때까지는 마음 편하게 계세요. 우선 아침부터 먹을까요. 카인, 히스클리프를 깨워주세요. 마녀들과 남쪽 마법사들이 돌이 되어버려서 식사를 만들 자가 없어요.


카인 : 그 녀석 만들 수 있어? 귀족 도련님인데.


샤일록 : 손재주가 좋은 아이잖아요. 그가 아니면 누가 만들어요?


카인 : 당신은? 바를 운영하고 있잖아? 전에 만들어준 경식 맛있었어.


샤일록 : 아침부터 타인에게 봉사하고 싶지 않아요.


카인 : 그럼 내가 만들게. 재료 집어넣고 끓이면 되는 거지?


아키라 : 아…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제가 만들게요.


무르 : 정말? 죽은 만들 수 있어?


아키라 : 죽을 알고 계세요!? 죽 만들 수 있어요! 이 세계에서도 죽을 먹을 수 있는 거군요!


카인 : 엄청나게 감격하고 있네.


샤일록 : 그러고 보니 전 현자님도 사람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맛있는 식사가 꼭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죠. 그럼 부탁드립니다. 부엌으로 안내해드릴게요.



부엌에 도착한 나는 충격을 받았다.





2화 아침밥과 상냥한 마법

잘 모르겠는 식재료들이 투명한 병에 담긴 채로 선반에 늘어서 있었다. 『느낌상 다시마』라고 적힌 뭔지 모르겠는 건조된 해초… 『아마도 쌀』이라고 적힌 흰 낱알… 『된장비슷』이라고 적힌 짙은 녹색의 끈적끈적한 것…



아키라 : 전 현자님, 고생하셨구나…



마음을 다잡고 냄비를 손에 든 순간 히스클리프가 달려왔다.


히스클리프 : 현자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키라 : 괜찮아요.


히스클리프 : 안 돼요. 이렇게 보여도 손재주는 좋은 편이니까 도와드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소매를 걷어붙이며 히스클리프가 웃었다. 무심코 넋을 잃고 볼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러나 히스클리프의 웃음은 어딘가 딱딱해 보였다. 낯을 가리는 아이가 힘내서 다가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은 사교적인 타입이 아닌데 파우스트의 건도 있으니 노력하는 것일지도 몰라. 고양이 할머니네 하나코도 그랬다. 다른 고양이들이 나와 놀고 있으니 그럼 나도… 하는 느낌으로 다가왔었다. 그가 안심할 수 있도록 나는 웃어보였다.



아키라 : 고마워요.


히스클리프 : 아니요. 그게, 뭘 만드실 건가요?


아키라 : 죽이요.


히스클리프 : 아아 전 현자님이 만드셨던 우유 수프 비슷한 거다. 밑간이 중요한 거였죠.



히스클리프는 에이프런을 착용하면서 지휘하듯이 긴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러자 저절로 창문이 열리고 밖에서 계란이 날아 들어왔다. 공중으로 떠오른 주전자가 기울어지면서 냄비에 물을 따랐고 동시에 끓어올랐다. 거기에 『느낌상 다시마』가 투입됐다. 『느낌상 다시마』는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지르며 물을 흡수해 두 배 이상 부풀어 오르더니 조금 과장해서 손 같은 형상이 되었다.



아키라 : 이건…


히스클리프 : 침몰초, 배에 달라붙어서 침몰시키는 해초에요. 저도 얼마 전까진 먹어본 적 없었어요. 어제는 잘 주무셨어요?


아키라 : 아 네. 현자의 서를 읽다보니 잠들어서…



부엌을 날아다니는 것들을 잠자코 바라보며 질문에 대답했다. 계란이 깨지고 볼 안에서 기분 좋은 리듬을 타며 빙글빙글 풀리고 있었다. 죽을 만들 준비를 하면서 히스클리프는 커피를 드립했다.



아키라 : 마법사는 편리하네요…


히스클리프 : 네?


아키라 : 아 아뇨! 커피는 제가 살던 세계에도 있었어요. 커피는 마법으로 안 만드나요?


히스클리프 : 하하 마법으로도 만들 수 있지만 직접 드립하는 게 맛있는 것 같아서요. 슈가는 마법으로 만들어요. 슈가 만들기는 이제 막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가장 먼저 배우는 마법이에요. 간단하게 보이지만 예쁜 별 모양으로 만들거나 단맛을 조절하는 데에 요령이 필요해요. 처음에는 가루 설탕 그대로이기도 하고, 맛이 별로 안 나기도 하고, 설탕물이 되는 경우도 있고.



냄비에 들어간 『아마도 쌀』이 보글보글 끓어가자 히스클리프가 계란물을 부었다. 계란물이 예쁜 원을 공중에 그리면서 빙글빙글 냄비로 떨어져갔다.



히스클리프 : 마법사의 슈가는 체력 회복이나 정신안정에 효과가 있어요. 그래서 인간들이 사가기도 한답니다. 현자님, 손을 내밀어주세요.



나는 히스클리프에게 손을 내밀었다. 히스클리프가 내 손바닥을 검지로 가리키자 예쁜 별 모양의 설탕이 몇 개정도 나타났다.



아키라 : 와… 대단해요!



히스클리프가 부끄러운 듯이 웃었다.





3화 마법사가 되기 위해

히스클리프 : 별거 아니에요. 마법사라면 다 할 수 있는걸요.



손끝에 올려 보니 금세 사르르 녹았다. 섬세한 감촉이 어딘가 그와 닮았다.



아키라 : (이게 마법사가 있는 세계…)


아키라 : 저… 마법사는 어떻게 해야 될 수 있는 건가요? 어제 외웠던 주문 같은 걸 외우면 저도 될 수 있나요?



혹시 마법을 배울 수 있다면 조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물어보니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히스클리프 : 그게… 마법사는 되고 싶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마법사는 인간 사이에서 갑자기 태어나요. 마법사의 아이라고 반드시 마법사인 것도 아니고. 돌연변이라고 해야 하나. 1만 명에 한 명 정도라고들 하지만 요즘은 출생률도 떨어지고 있으니까요. 그만큼 오래 살지만. 잡 체인지가 아니라 뮤턴트 히어로인 거냐고 전 현자님이 말씀하셨어요.


아키라 : 그렇구나… 그럼 주문을 외운다고 누구나 마법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네요.


히스클리프 : 그렇네요… 주문은 마력을 깃들인 마음을 강화하는 주술 같은 거예요. 그래서 마법사마다 각자 달라요. 입속에서 좋아하는 말을 외우고 있는 사이에 신비한 힘이 깃들게 되는 거라고 배웠어요.


아키라 : 좋아하는 말이 주문이 되는 거군요. 히스클리프의 주문은 어떤 의미인가요?


히스클리프 : …



히스클리프는 놀란 듯이 눈을 깜빡이며 입술을 다물었다. 그리곤 부끄러운 듯이 시선을 떨구며 볼을 붉히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히스클리프 : …해질녘이랑 빗소리…


아키라 : 해질녘이랑 빗소리…


히스클리프 : 이상, 한가요…?


아키라 : 이상하지 않아요. 저도 해질녘이랑 빗소리 좋아해요.



히스클리프는 안심한 듯 웃었다. 자기도 모르게 말해버린 모습에 수줍은듯 요리를 계속했다.



히스클리프 : 죄송해요. 별로 들어본 적 없는 질문이라 뭔가 긴장돼서…


아키라 : 저야말로 죄송해요! 실례되는 질문이었나요?


히스클리프 : 아니요. 너무 애 같지 않나 해서요. 진실된 사랑이나 우주의 진리 같은 걸 주문으로 쓰는 사람도 있으니까.


아키라 : 멋지네요. 그치만 저도 좋아하는 노래 제목이나 고양이들의 이름이 될 것 같아요.


히스클리프 : 고양이 좋아하세요?


아키라 : 네, 좋아해요.


히스클리프 : 파우스트 선생님도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선생님은 숨기고 계시는 것 같지만 몰래 놀아주고 계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아키라 : 그런가요. 마음이 맞을 것 같네요.


히스클리프 : 무서워 보이지만 좋은 선생님이세요.



어느샌가 히스클리프는 눈을 마주치며 웃어주었다.



히스클리프 : 파우스트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사람이 몸과 물건을 이어서 쓰듯이, 마법은 마음과 자연을 이어서 쓰는 거라고.


아키라 : 마음과 자연…


히스클리프 : 네. 마음속으로 그리는 힘이 강할수록 마법은 성공하고 강해져요.


아키라 : 마음으로 그린다… 그 힘이 강하다면 무슨 일이든 가능한가요?


히스클리프 : 마법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마법사의 마력이 얼마나 강한지와 숙련도에 따라 달라져요. 죽은 자를 되살리거나, 시간을 되돌리거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아키라 : 그런가요. 어제 히스클리프는 시계를 이용해서 병사들의 시간을 멈춘 것처럼 보였는데.


히스클리프 : 아아 아니에요! 시간이 멈춘 것을 상상하면서 움직임을 멈춘 것뿐이에요.



히스클리프는 눈썹을 내리고 웃었다.



히스클리프 :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좋겠죠. 저는 결심을 제대로 못하니 다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사람다운 감상에 나는 친근함이 느껴졌다.



아키라 : (마법이라니 깜짝 놀랐지만 역시 다들 마음은 인간과 똑같구나)


히스클리프 : …좋아. 완성됐어요. 홀로 가져갈게요.


아키라 : 네, 부탁해요.






4화 마법사와 아침 식사를

무르 : 와아 아침밥이다!


샤일록 : 무르, 하늘을 날지 말아요. 앉아서 식사하세요.


스노우 : 오오 이건 먹어본 적이 있구나. 묵이라고 하는 게지.


화이트 : 국이겠지.


카인 : 죽이에요. 소금…


브래들리 : 아프잖냐! 뭐야, 갑자기!


카인 : 브래들리… 언제부터 있었어?


브래들리 : 아까부터 있었잖아! 눈깔을 어따 두고 다니는 거야!


히스클리프 : 아까도 내가 안 보였었지. 괜찮아? 카인…


카인 : 곤란하네… 뭐, 일단은 식사하자. 식기 전에.


샤일록 : 전부터 생각한 건데 이 죽이라는 건 커피와 어울리지 않네요.



그들과 같이 있는 사이에 그들의 특성이 조금씩 파악되는 것 같았다. 무르는 자유분방하고 행동적. 샤일록은 어른스럽지만 마이페이스. 카인은 다정한 연상 같아. 히스클리프는 낯을 가리고. 잘 모르겠지만 브래들리는 화를 잘 낸다. 스노우와 화이트는 모두가 존경하고 있어. 고양이 할머니 댁의 정원에서 각자 좋아하는 방식으로 생활하고 있던 고양이들이 생각났다.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는, 자유로운 그 느낌이 닮았어. 왁자지껄한 대화도.



스노우 : 그래 맞아. <거대한 재앙>에 대한 것을 현자에게 설명해 주어야지.


카인 : 아까 내가 얘기했어.


화이트 : 그랬는가. 그럼 되었어. 수고를 덜었구나.


스노우 :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무르에게 물어보도록 하려무나. 무르는 <거대한 재앙>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거든.


샤일록 : 지금의 그에겐 무리에요. 비밀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나머지 영혼이 부서졌어요.


아키라 : 영혼이 부서지다니… 그런 일이 자주 있나요?


샤일록 : 거의 없죠. 눈알을 교환 당하거나 유령을 마법으로 묶어두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에요.


브래들리 : 흥. 이상한 놈들의 모임이네.


샤일록 : 저는 좋아해요. 인물이든, 술이든. 뛰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기묘하고 이질적인 것은 풍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카인 : 서쪽의 마법사다워.


샤일록 : 당신도 중앙의 마법사답게 성격이 올곧죠.


아키라 : 저… 서쪽답다, 중앙답다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요?


스노우 : 이 세계에는 5개의 나라가 있지. 중앙, 북, 서, 동, 남.


화이트 : 사는 나라에 따라 마법사의 성격이 다르단다. 전 현자가 현자의 서에 기록해 놓았을 게야.


아키라 : 현자의 서…



나는 식사를 끝낸 후 방에서 가져온 현자의 서를 펼쳤다.



『현자의 마법사는 중앙, 동쪽, 서쪽, 남쪽, 북쪽 나라에서 4명씩 선발되는 것같다. 선택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힘. 현자의 의지로 선택할 수는 없다. 프리티 마녀군단은 만들 수 없나 봐. 아쉽! 마법사는 지역에 따라 성격에 특징이 있다. 꼭 출신지가 아니더라도 그 지역에 오래 살면 기질이 몸에 배는 것 같다. 서쪽 출신이면서 동쪽 마법사로 불린 자도 있다.』


『중앙의 마법사는 정의감이 강하다. 동료를 생각하고 싫은 일도 도맡아 하는 리더 기질.』


아키라 : (중앙의 마법사… 카인과 오즈. 카인은 알 것 같아.)


『동쪽의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싫어한다. 마음을 닫고 살음. 혼자가 좋아. 근본은 성실. 친해지면 귀엽다. 화나게 만들면 평생 마음에 담아둔다.』


아키라 : (동쪽의 마법사… 히스클리프와 파우스트.)


『서쪽의 마법사들은 기분파에 변덕쟁이. 얘기가 안 통해. 마이페이스. 축제를 좋아함. 이상한 애들이 많다.』


아키라 : (서쪽의 마법사… 무르와 샤일록…)


『남쪽의 마법사들은 상냥하고 친절하다. 거의 치유계. 사람을 돕는 걸 좋아함. 마력은 약하면서 타인을 감싸려 드니 걱정…』


아키라 : (남쪽의 마법사… 그러고 보니 못 만났네… 만나보고 싶다… 치유계의 친절한 마법사…)


『북쪽의 마법사들은 무섭다. 진짜 무섭다. 사이가 나쁘고 자기중심적. 얘네는 세계가 멸망해도 살아남을 거다.』






5화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전에

『아마 대가 바뀌어도 얘네는 남아있을 거니까 자세하게 적어둔다.』


『스노우와 화이트.
비교적 온화하고 협조적. 농담을 좋아함. 최 연장 마법사로 몇천 년 이상 살았다고 한다.』


아키라 : (스노우와 화이트… 생각보다 훨씬 오래 살았구나.)


『브래들리. 요주의.
범죄집단의 보스였다. 지금은 죄인. 화내면 겁나 무섭지만 먹을 거로 회유 가능.』


아키라 : (그러고 보니 죽도 잘 먹었지…)


『오웬. 요주의.
기분 나쁘고 무서움. 대화하면 정신이 붕괴 될 것 같음. 흥미를 갖지 않도록 행동하면 괜찮다.』


아키라 : (카인에게 들었던 사람… 왠지 무섭네…)


『미스라. max 요주의.
겉보기와 존댓말에 속지 않는 게 좋다. 짐승. 살해당할 거야.』


아키라 : (짐승… 살해당한다니… 만나고 싶지 않은걸… 어라…? 한 명 더 있네…)


『오즈.
북쪽의 마법사면서 중앙으로 소환됐다. 예전에 마법으로 세계를 지배했던 악명 높은 마법사.』


아키라 : (마법으로 세계를 지배… 악명 높은 지배자… 무서워 보이긴 했지만 그렇게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는데.)


샤일록 :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현자의 서를 읽고 있을 때, 샤일록이 옆에 앉아 김이 올라오는 와인병과 다양한 모양의 잎, 작은 열매, 장미 꽃봉오리를 테이블에 늘어놓았다.



샤일록 : 아… 의식을 치루는 정오까지 시간이 남길래 현자의 서를 읽고 있었어요.


샤일록 : 무척 집중해서 읽고 계셨어요. 재미있으신가요?


아키라 : 네. 이 세계에 대한 이야기나 마법사분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샤일록 : 그건 다행이네요.



샤일록은 웃으며 잎과 열매, 장미 꽃봉오리를 잘게 잘라 와인병 입구로 넣었다. 와인이 넘치려 하자 텀블러에 따라 자신이 마시곤 다시 자른 잎을 넣었다. 그의 작업은 무척 재밌어 보였다.



아키라 : 샤일록은 뭘 하는 건가요?


샤일록 : 허브 와인을 만들고 있어요. 저는 서쪽에서 바를 운영하고 있답니다.


아키라 : 세계를 구하는 마법사인데 바에서 일을 하는 건가요?



샤일록은 장미 꽃잎을 병에 채워 넣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샤일록 : 세계를 구해도 먹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세계를 구하지 않더라도 먹고 살 수 없지만.


아키라 : 히, 힘들겠어요.


샤일록 : 아니요. 재미있어요. 저는 이 일이 좋아요. 성가신 일은 많이 있지만, 스스로가 즐길 시간이 있다면 마음이 풍요로운 생활을 보낼 수 있답니다.



샤일록의 말에 왠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모처럼 기묘한 세계에 왔는데 이 세계를 다 즐기지 못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전에 이 세계를 즐기고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키라 : 저… 마법을 보여달라고 하면 실례일까요?


샤일록 : 때와 장소와 사람에 따라 다르겠네요. 지금 이 시간에 현자님과 저라면, 적어도 저는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마법을 보여줘, 라고 부탁받는 건 하면 안 되는 장난 같아서 싫어하지 않아요. 부끄러운 척을 하며 당신에게라면, 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지죠.



요염한 시선을 받고 있자니 어째서인지 얼굴이 빨개졌다.



아키라 : 그… 그런가요…



샤일록이 손가락을 튕기자 와인병이 보글보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얀 증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병 속에서 잘린 잎이나 장미 꽃봉오리, 열매들이 빙글빙글 춤추고 있었다.



아키라 : 와아…


샤일록 : 저는 봉사계라 부탁받기 전에 그만 서비스 해버렸네요. 다음엔 사랑스럽게 부탁해주세요.






6화 소환 의식

곁눈질로 쳐다보던 샤일록은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샤일록 : 마법사는 마음으로 마법을 써요. 그래서 사랑을 정말 좋아하죠. 동시에 사랑이 무섭고 미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법사는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동물에게도 별에게도 사랑을 해버리죠. 바람을 사랑해서 온 세상을 쫓아다니고, 꽃을 무서워해서 세상을 어둠으로 덮은 채로 일생을 마치는 마법사도 있어요. 바보 같을지도 모르지만 부디 웃지 말아주세요, 현자님.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진지하게 자신의 성질과 그로 인한 나날들을 받아들이면서 즐겁게 행복을 찾고 있는 거랍니다.



와인병의 수증기가 잦아들고 테이블 위를 정리한 샤일록이 일어섰다.



샤일록 : 실례했습니다. 마저 독서를 즐겨주세요.


아키라 : 아… 아뇨… 다음에 또 들려주세요. 마법사의 이야기. 무척 재밌었어요. 마법사의 이야기 전 좋아요.



샤일록은 눈을 깜빡이며 기쁜 듯이 웃었다.


샤일록 : 물론이죠. 기꺼이.



정오가 되자 스노우와 화이트를 비롯한 마법사들이 모였다. 새로운 마법사를 소환하기 위해.



스노우 : 하는 방법은 의식을 진행하면서 알려주도록 하마. *OJT라고 하지.
*OJT : 직장 내 교육훈련


아키라 : OJT…?


화이트 : 전 현자가 썼던 말이란다. 실무로 배우는 것은 OJT.


스노우 : 강의로 배우는 것은 연수.


화이트 : 회의는 미팅.


스노우 : 지도하는 역할을 트레이너. 우리는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만.


아키라 : 알겠습니다… 저, 한 가지 먼저 질문해도 될까요? 아프거나, 무섭진 않나요…?



샤일록과 무르는 눈을 맞췄다.



샤일록 : 저희가 볼 땐 아프거나 무서운 것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무르 : 전 현자님은 울었었지?



나는 겁먹은 채 뒤로 물러섰다.



아키라 : 자, 잠시만요. 현자의 서를 읽어봐도 될까요? 미리 파악한 다음에 도전해도…


카인 : 물론이야. 소환의식에 관한 게 쓰여있다면 좋겠네.



나는 급하게 페이지를 넘기면서 소환의식에 대한 부분을 찾았다.



아키라 : …있다!


『새로운 마법사를 소환하는 방법
마력이 다해 문장이 사라졌을 때, 현자의 마법사는 은퇴하게 된다. 그때 현자가 새로운 마법사를 소환한다. 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거대한 재앙>과의 싸움으로 마법사가 돌이 되는 경우에도 그 수 만큼 새로운 마법사를 소환한다. 자세한 소환 방법은 이하 서술. 어쩌고(까먹었다) 성배에 마나석을 투입해 솟아 나온 검은 물을 다 마시고 잔을 하늘로 치켜든다. 검은 물은 피 같은 냄새가 나는데 꽃의 꿀, 생선, 허브와 치즈를 최악의 방법으로 섞어놓은 맛이 난다. 울면서 마셨다.』


아키라 : …꿀꺽


스노우 : 잘했구나.


화이트 : 잘했구나, 현자여.


아키라 : 다… 마셨어요… 우우…


브래들리 : …잘도 마시네…


카인 : 힘냈구나, 아키라!


히스클리프 : 이따가 맛있는 커피를 내려드릴게요!


무르 : 역시 울었어.


샤일록 : 저라도 울었을 거예요.


스노우 : 현자여, 『장리(掌理)의 성배』를 머리 위로 들어야 한다.


화이트 : 무슨 일이 있어도 성배에서 손을 떼면 안 돼.



울상을 지으면서 양손으로 성배를 쥐고 머리 위로 들었다. 그러자 이상한 감각이 퍼졌다. 나 자신이 이제부터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성배가 된 것만 같은…



아키라 : …!



몸속에서 상쾌한 충동이 하늘로 오르는 용처럼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곧 진짜 바람이 되어 내 주변에서 소용돌이쳤다. 큰 방의 천장이 새까맣게 변했다.



아키라 : …이게 소환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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