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스토리 1부 2장 현자의 서 | ▼PAGE END | ||||||
재앙이 할퀴고 간 자국 | 생명의 등불 | 현자의 힘 | 믿기 힘든 진실 | 일말의 불안 | 외톨이 | 일본어 매뉴얼 | 달을 사랑하여 |
1화 재앙이 할퀴고 간 자국
오즈 : …
스노우 : 오즈.
화이트 : 오즈여.
오즈 : 스노우, 화이트.
스노우 : 파우스트의 상태는 어떤고.
화이트 : 살릴 수 있겠는가.
스노우 : 우리 중에서는 그대가 가장 강한 마법사이지 않니.
화이트 : 그대가 할 수 없다면 그 누구도 살릴 수 없을 게야.
오즈 : 마력이 돌아오지 않아. 지금은 약초로 고통을 진정시키고 있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전하고 와.
스노우 : 차갑구먼…
화이트 : 슬프구먼…
오즈 : … 현자가 제때 와야해, 그렇지 않으면…
스노우 : 오, 북쪽 마법사들이구나.
화이트 : 그대들은 어디로 가는 게야.
미스라 : 할 일은 끝냈습니다.
스노우 : 미스라, 동료가 죽어가고 있다는 게야.
미스라 : 하아… 그런가요.
화이트 : 마음이 없는 대답이구나.
스노우 : 오즈 보다 차가운 남자로구나.
미스라 : 할 일을 끝내면 자유의 몸입니다. 어딜 가든 제 마음이죠.
화이트 : 오웬, 그대도인가?
오웬 : 후후… 세상이 멸망할 뻔했는걸? 다들 공포와 상실감에 울고 있겠지. 얼른 보러 가야 해. 분명 재밌을 거야.
화이트 : 여전히 나쁜 아이로구나.
오웬 : 하하… 벌을 줄 거야? 무서워, 무서워, 북쪽 마법사 쌍둥이 선생님.
스노우 : 엉덩이를 때려도 그대의 본성은 바뀌지 않겠지.
화이트 : 바뀌지 않겠지.
오웬 : 잘 알고 있네. 그럼 안녕.
화이트 : 가버렸어… 응? 왜 그러느냐, 미스라.
미스라 : 아뇨. 오웬이 먼저 선수를 쳐서…
화이트 : 떠날 기회를 놓친 건가.
스노우 : 뻔뻔하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구나.
미스라 : 하아, 감사.
브래들리 : …이 틈에…
스노우 : 예끼, 브래들리!
브래들리 : 들켰다! …윽!
화이트 : 그대는 자유롭게 갈 수 없어.
스노우 : 그대는 죄수니까. 우리로 돌아가야지.
화이트 : 죄인이 있을 감옥으로 돌아가야지.
브래들리 : 젠장! 이거 놔, 할배들!
스노우 : 할배 아닌걸.
화이트 : 할배 아닌걸.
브래들리 : 꼬맹이인 척 하지 마. 망할 할배!
스노우, 화이트 : 꺄아꺄아!
미스라 : 오즈.
오즈 : …
미스라 : 세계 최강의 마법사라고 내세우더니, 이번 <거대한 재앙> 앞에서는 당신도 갓난아기와 똑같았네요.
오즈 : … 내가 내세운 게 아니야.
미스라 : 언젠가 제가 당신을 멸하고, 세계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가 되어드리죠. 각오해주세요.
오즈 : 네가 선택받은 마법사가 아니었다면 지금 죽였다.
미스라 : …
오즈 : 떠나라.
미스라 : 언젠가 또 봐요.
오즈 : …
화이트 : 미스라도 떠났는가…
스노우 : 오즈여, 떠나는 자에게 막말을 들어버렸구나.
화이트 : 멍하니 있으니까 퇴장할 때의 연출로 쓰여버리는 게야.
오즈 : …입 다물어.
스노우 : 어딜 가는 게야.
오즈 : 파우스트에게.
스노우 : 그랬지. 슬프구나…
화이트 : 슬프구나…
브래들리 : …파우스트… 그 동쪽의 저주상은 못 살리는 거야?
스노우 : 현자가 없으니…
화이트 : 현자가 없으니 우리도 어쩔 수가 없구나…
2화 생명의 등불
파우스트 : …
화이트 : 파우스트야.
스노우 : 무언가 바라는 게 있으면 말해다오.
파우스트 : …바라는 것…? 아무것도 없어…
브래들리 : 사양하지 마, 동쪽의 저주상. 마지막까지 무욕할 필요는 없어.
파우스트 : …
브래들리 : 동쪽 마법사들은 음침하고, 특히 너는 저주상까지 하고 있으니까 성격이 나쁠 거 같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동료를 감싸다가 죽어가다니, 바보다. 바보는 싫지 않아.
화이트 : 브래들리…
스노우 : 착한 아이로구나, 브래들리.
브래들리 : 시끄러. 착한 아이라고 하지 마. 나는 우는 애도 울음을 그치게 만드는 북쪽 마법사이자 사상 최강으로 흉악한 대 도적단의 보스다.
스노우 : 파우스트여, 무언가 없는가?
화이트 : 브래들리도 이렇게 말하지 않니, 사양하지 말거라.
파우스트 : …없어… 내가 싫어하는 경박한 인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멸해가겠지… …꼴 좋다… 자업자득이야… 큭큭큭… 하하하하…
브래들리 : … 역시 음침하고 성격 나빠…
스노우 : 쉿. 조용히 하거라.
화이트 : 파우스트의 인생을 생각해보면 인간을 저주하더라도 어쩔 수 없지…
파우스트 : …
파우스트 : …드디어, 길었던 시간이 끝난다…
오즈 : …파우스트…
파우스트 : …드디어 해방될 수 있어… 신이시여, 어서 저를 자유롭게…
오즈 : …
오즈 : …?
브래들리 : 왜 그래, 오즈.
오즈 : 현자의 기운이…
무르 : 도착!
아키라 : …우욱…
무르 : 어라? 현자님?
샤일록 : 현자님, 괜찮으세요? 눈이 돌고 계세요.
아키라 : 괘… 괜찮아요…
카인 : 무르가 난폭하게 하늘을 나니까. 현자님, 손을 주시죠. 저쪽으로!
히스클리프 : 파우스트 선생님…!
아키라 : …!
문을 열자 침대에 누워있는 청년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서 있었다. 파우스트 선생님이라고 불린 사람은 밀랍처럼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었다. 감긴 붕대 밑으로 독 같은 연기가 올라오고 때때로 불씨마저 흩날렸다. 상상했던 것보다 심각한 상황에 나는 숨을 삼켰다.
스노우 : 현자인가!
화이트 : 현자가 왔구나!
브래들리 : 얘가 현자? 진짜로?
오즈 : …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아 긴장됐다. 특히 그들의 중심에 있는 청년은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얼려버릴 것 같은 무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매서운 눈보라 같은, 온도가 없는 눈동자였다. 그렇지만 그 차갑고 무서운 눈동자는 이쪽을 본 순간, 안도하는 것 같았다.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오즈 : …제때 왔군…
샤일록 : 파우스트의 상태는? 아직 살아있나요?
파우스트 : …안타깝게도…
샤일록 : 다행이다. <거대한 재앙>과의 싸움으로 희생된 마법사는 딱 10명, 11명은 딱 떨어지지 않으니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파우스트.
히스클리프 : 선생님! 파우스트 선생님…!
히스클리프가 침대에 매달리며 부상 당한 사람을 들여다보았다. 상처 입은 청년이 힘들게 눈을 떴다.
파우스트 : …히스클리프…
3화 현자의 힘
히스클리프 : 이제 괜찮아요! 현자님이 와주셨어요! 현자님이 구해주실 거예요!
파우스트 : …너는, 안 다쳤어…?
히스클리프 : …안 다쳤어요…
파우스트 : …그래…
파우스트가 희미하게 웃으려는 것 같았다.
파우스트 : …다행…
그렇지만 웃음이 만들어지기 전에, 파우스트의 움직임이 천천히 멈췄다. 히스클리프의 손을 잡으려고 했던 파우스트의 손끝이 침대로 툭 떨어졌다. 눈을 뜬 채로 파우스트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히스클리프 : 선생님…! 싫어, 죽지 마!
스노우 : 안 돼, 숨을 쉬지 않고 있어!
화이트 : 현자야, 서둘러야 한다!
오즈 : 현자여.
무서운 눈매의 청년이 밤의 어둠과 같은 고요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즈 : 손을.
청년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즈 : 나의 이름은 오즈. 중앙의 마법사다. 네 힘을 빌리지.
아키라 : …
망설이면서 오즈의 손바닥 위로 손을 포갰다. 오즈의 차가운 손끝이 내 손을 잡은 순간, 작은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신비한 바람은 점점 강해지며 우리의 머리카락과 옷을 휘날리게 만들었고 이윽고 소용돌이쳤다. 포갠 손의 중심과 오즈의 몸에서 하얀 빛이 떠올랐다. 오즈가 신기한 주문을 외웠다.
오즈 : 《ヴォクスノク》
아키라 : …!
그 순간 희미한 빛이 강하게 빛나며 파우스트의 몸으로 빨려들어 갔다.
스노우 : 성공했구나!
화이트 : 성공했구나!
히스클리프 : 선생님의 몸에서 연기가 사라져 가고 있어!
카인 : 이름을 계속 불러! 파우스트, 파우스트…!
샤일록 : 파우스트, 정신 차려요.
무르 : 일어나, 파우스트! 아직 잘 시간 아니야!
브래들리 : 눈을 떠! 동쪽의 저주상!
오즈 : …
파우스트 : …
눈을 뜬 채로 움직이지 않았던 파우스트의 눈꺼풀이 꼭 감겼다. 시간이 되돌아간 것처럼 그는 고통에 몸을 조금 움직였다.
파우스트 : …너무해… 겨우 죽은 걸…
다행히도 구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음과 동시에 방안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카인 : 의식이 돌아왔어! 다행이야…!
무르 : 축하!
샤일록 : 일단 안심할 수 있겠네요.
브래들리 : 하하 끈질긴 녀석이야.
히스클리프 : 선생님… 다행이다… 흑…
스노우 : 그래, 정말 위험했어.
화이트 : 잘됐구나. 조마조마했단다.
오즈 : …
어느샌가 오즈의 손이 멀어져있었다. 진이 빠진 내 앞으로 쌍둥이가 다가왔다.
스노우 : 수고 많았다, 현자여.
화이트 : 파우스트가 살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대의 덕분이야.
나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키라 : 저는 아무것도… 그냥 서 있기만 했는 걸요. 그래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히스클리프 : 그렇지 않아요.
히스클리프가 나를 돌아봤다. 어렴풋이 눈물을 보이며 나를 올곧게 쳐다보고 있었다.
히스클리프 : 현자님은… 중앙의 대신이 아니라, 저희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셨어요. …이곳에 와주셨어요. 그래서 파우스트 선생님이 살 수 있었던 거예요. 고마워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히스클리프는 조심스럽게 웃었다. 어딘가 어색하긴 하지만 따뜻한 그의 마음이 전해져왔다. 나도 숨을 내쉬고 웃었다.
4화 믿기 힘든 진실
파우스트가 다시 의식을 잃고, 이번엔 조용히 잠들었다. 일단 한숨 돌린 상황에서 한 그림자가 움직였다. 오즈가 말도 없이 방을 나가려고 했다.
스노우 : 오즈여.
화이트 : 어디로 가는 겐가.
오즈 : 내가 할 일은 끝났어.
카인 : 기다려줘. 내년에 있을 <거대한 재앙>과의 싸움을 대비해 우리끼리 이야기하지 않겠어? 이런 피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야.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도록 내년 <거대한 재앙>의 습격에 준비하고 싶어. 당신의 힘이 필요해, 오즈.
오즈 : 거절한다.
카인 : 그렇게 매정하게 대답하지 말아줘… 우리는 같은 중앙의 마법사잖아. 당신이 어울림을 꺼려하는 건 알고 있어. 그렇지만 같은 적에게 다시 지지 않도록 서로의 힘을 알고 작전을 세워야 할 때야.
오즈 : 젊은 마법사들은 무리를 짓고 싶어 하지. 무리에 의미는 없어. 살아남을 수 있는 자가 살아남을 뿐이다. 도태되고 싶지 않다면, 혼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힘을 길러.
카인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힘을 합쳤더라면 잃지 않았을 동료가 몇 명이나 있었어.
오즈 : 허상이다.
카인 : …
오즈 : 숙명을 바꿀 수는 없어.
카인은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들 뭔가 두려운 듯이 오즈의 뒷모습을 무언으로 배웅했다. 오즈가 사라진 후, 쌍둥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스노우 : 이런이런, 잘도 말하지… 그러는 본인은 힘으로 숙명을 바꾸어 놓고서는.
카인 : 에?
화이트 : 아니, 혼잣말이다. 나는 카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만.
스노우 : 나도 마찬가지. 역시 중앙에서 기사단을 이끌던 자답구나.
카인 : 감사. 그렇지만 오즈를 설득하지 못해서야. 우리를 이끌어줄 사람으로는 그가 가장 적격이잖아.
브래들리 : …나는 반대야.
카인 : 어째서?
브래들리 : 어째서냐고? 누가 오즈의 명령을 거스를 수 있겠어? 저 녀석에게 반항하면 순식간에 터진 토마토처럼 될 텐데?
카인 : 그러니까 적격인 거야. 너 같은 죄인이나 미스라, 오웬도 오즈는 따르잖아.
히스클리프 : 미스라… 오웬… 그 두 사람은 무서우니까…
샤일록 : 마력이 강한 정도를 따져보았을 때 그들을 통솔하는 게 가능한 건 오즈정도겠네요.
브래들리 : 너희는 어떤데, 할배들.
스노우 : 호호호 우리는 은거하는 몸이니 말이야.
화이트 : 늙은이는 거친 일에선 은퇴했지.
브래들리 : 자기들 좋을 때만 늙은 척해대고…
아키라 : (다들 아까 전의 오즈란 사람의 힘을 빌리기를 바라나 봐. 그건 그렇고…)
나는 천천히 실내를 둘러봤다. 상황이 진정된 순간,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불안이 엄습해왔다.
아키라 :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이제 더이상 촬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야…)
혹시라도 꿈에서 깰지 몰라 나는 있는 힘껏 내 뺨을 때려봤다.
아키라 : 아파…
히스클리프 : 현자님!?
브래들리 : 왜 자기 뺨을 때리는 거야!?
아키라 : …역시 꿈이 아니야…
스노우 : 전 현자는 볼을 꼬집었었지.
아키라 : 전 현자…?
화이트 : 그래. 그대가 오기 전의 현자를 말하는 것이야.
스노우 : 좋은 걸 보여주마.
화이트 : 우리를 따라오도록 하거라.
아키라 : …그치만…
스노우 : 무서워하지 않아도 괜찮다. 자, 그대의 손을 잡아주마.
화이트 : 불안할 테니 말이야.
아키라 : 가… 감사합니다…
스노우와 화이트가 손을 잡고 나를 방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5화 일말의 불안
아키라 : 저, 화이트 씨, 스노우 씨…
스노우 : 우리에게 경칭을 쓰지 않아도 괜찮단다. 현자란 그런 자니까.
아키라 : 그럼… 스노우, 화이트. 안내라니 어디로 가는 건가요?
화이트 : 현자의 서가 있는 곳.
스노우와 화이트가 나를 안내해준 곳에는 수많은 책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역사와 지식의 양이 느껴져 무심코 압도당했다.
아키라 : 이건…
스노우 : 전부 현자의 서란다.
아키라 : 이거 전부…?
화이트 : 그래. 이계에서 이 세계로 넘어온 자들이 남겨놓은 것이지.
스노우 : 이게 저번 현자가 적은 현자의 서다.
화이트 : 우리는 못 읽는 언어로 적혀있었다만, 그대는 읽을 수 있는고?
훌륭한 디자인의 묵직한 책을 건네받자 긴장됐다. 고동이 빨라지는 걸 느끼며 책을 폈다. 책에 적혀있는 건 일본어였다.
『10월 30일
할로윈 꿈이 깨지 않는다. 재밌는 꿈이니 뭐 괜찮나.』
『11월 3일
마녀가 귀엽다. 퍼레이드를 했다. 인기인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11월 10일
아무리 그래도 꿈이 너무 길다. 설마 꿈이 아닌 건가? 어떻게 해야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지? 도쿄로 돌아가고 싶어… 라멘이랑 오뎅이랑 카레가 먹고 싶어…』
아키라 : (…이건… 역시 꿈이 아니야…?)
심한 동요를 감출 수 없어 급하게 페이지를 넘겼다. 일기 같은 기록들이 계속되다, 맥없이 덜렁 쓰여진 글자를 보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틀렸다. 돌아갈 수 없어. 나는 평생 여기서 살아야 하는 거다. 마법사에게 속았다.』
속았다고? 나는 파랗게 질려 쌍둥이를 돌아봤다.
스노우 : 응?
화이트 : 응?
스노우 : 왜 그러지?
화이트 : 역시 못 읽는 겐가?
웃으며 다가오는 두 사람에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아키라 : (평생 돌아갈 수 없다니, 마법사에게 속았다는 건… 나도…?)
쌍둥이는 서로 얼굴을 한번 마주 보곤 나를 보고 싱글싱글 웃었다.
스노우 : 왜 그러지?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화이트 : 그대가 아이라면 우리가 어른이 되어주지.
스노우, 화이트 : 하나 둘
쌍둥이가 손을 잡고 목소리를 맞추었다. 그러자 비 오는 날의 죽순처럼 그들이 쑥 커졌고 곧 늘씬한 청년의 모습이 되어 나를 내려다봤다.
스노우 : 자, 현자여.
화이트 : 머리를 쓰다듬어 줄까.
6화 외톨이
스노우랑 화이트는 나를 달래주기 위해 어른의 모습이 되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아까까지는 신기한 마법의 세계를 조금 재밌어했으니까. 그런데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갑자기 어른이 된 그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 충격적이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스노우 : 현자여!?
화이트 : 무슨 일이야!?
아키라 : 아… 그야, 아이…
스노우 : 모습을 바꾸는 것 정도야 아주 쉬운 일이지.
화이트 : 놀라게 만들었나보구나.
나는 눈썹을 늘어뜨리며 입 밖에 내는 걸 아마 조금 주저하고, 물어봤다.
아키라 : …속인 건가요…?
스노우랑 화이트는 신기하다는 듯이 웃었다.
스노우 : 속이지 않았단다. 아이의 모습이 원래 우리의 모습이야.
화이트 : 마법사는 오래 살거든. 마력이 성숙했을 때의 모습으로 육체의 시간이 멈춰버리는 거란다.
스노우 : 그렇지만 가끔씩 어른이 되는 것도 좋지.
화이트 : 어떠냐, 꽤 잘생겼지?
스노우랑 화이트는 내 상태를 살피고 양쪽에 앉아 조용히 손을 잡아주었다.
스노우 : 미안하구나, 현자여. 우리는 쌍둥이거든. 고독이 무엇인지 잘 몰라.
화이트 : 불안해 보이기에 손을 잡아주긴 했지만, 그대의 고독을 잘 알아주지 못했어.
스노우 : 불쌍하게도… 집에 돌아가고 싶은 게지.
화이트 : 우리도 돌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해.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위로해주는 목소리도, 시선도 따뜻하다.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가슴이 뜨거워졌다. 두 사람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스노우 : 그대의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이러고 있지.
화이트 : 우리는 쌍둥이라 고독을 잘 몰라. 그렇지만 서로를 잃었을 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단다.
아키라 : …서로를 잃어?
스노우 : 화이트가 죽어버렸거든. 화이트는 살아있지 않아. 유령이란다.
나는 놀라서 화이트를 바라봤다. 화이트는 변함없이 웃고 있었고 잡고 있는 손의 감촉도 느껴졌다. 그런데…
화이트 : 맞아. 나는 살아있지 않아. 스노우가 영혼을 붙잡아두어 잔상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지.
스노우 : 그만큼 혼자인 걸 견딜 수 없었어. 그대는 대견하구나. 혼자여도 타인을 상처입히지 않고.
화이트 : 외롭고 무서웠을 터인데 파우스트를 구해주었지. 다시 한번 고맙구나.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다정한 목소리를 의심하고 싶지 않아. 조심스럽게 잡은 손을 놓고, 잘못 본 것이길 바라며 다시 책을 폈다. 『마법사에게 속았다.』 이렇게 적힌 페이지의 다음 장을 넘겨봤다.
아키라 : 헷갈리게…!
스노우 : 왜, 왜 그러느냐?
화이트 : 이상한 게 적혀있었는가?
『속인 게 아니었다. 비관적인 기분이 되어 의심해버렸다. 마법사들 미안해. 진짜 미안!』
전 현자님… 뭔가 좀 얼렁뚱땅인 사람이구나.
아키라 : 저… 이 현자의 서를 쓴 전 현자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스노우 : 요령이 좋은 청년이었지. 검은 머리에 말하는 걸 좋아하는.
화이트 : 리맨이라고 했었지. 전 세계에서는 잔업수당이란 것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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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일본어 매뉴얼
스노우 : 전 현자가 소속되어 있던 길드에서는 손에 넣기 힘들었던 보물인 듯했지.
화이트 : 내 이름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단다. 소속되어 있던 길드도 내 이름 같았더라면 좋겠다고 슬퍼했지.
아키라 : (…블랙기업에 다니고 있었던 걸까?)
『돌아갈 방법을 여러 방면으로 찾아보고 있지만 쉽사리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뒷사람을 위해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에서 전 담당자가 인수인계도 안 하고 튀어서 매뉴얼의 중요성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일본어밖에 할 줄 몰라서 이 점은 좀 죄송하지만. 아마 일본어로 된 현자의 서는 이게 처음입니다. 고대문자 비슷한 거로 적혀있는 걸 찾았지만 「있다」 라는 글자밖에 못 읽겠어서 관뒀습니다. 위쪽 선반에 있는 두루마리입니다. 참고로 전 현자의 서는 아무리 봐도 아라비아 문자인데 이것도 전혀 못 읽겠어서 관뒀습니다. 영문 메일도 늘 후배에게 맡겼기 때문에 영어도 몰라서 관뒀습니다. 영어로 적혀있는 현자의 서는 서쪽 선반 중앙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참고하시길.』
이후로 일기 같기도 하고 매뉴얼 같기도 한 글이 섞여 있었다. 한참 동안 페이지를 넘겨보니 커다란 꽃 그림으로 장식해놓은 『좋은 소식!!!』 페이지가 나왔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중앙의 아서 왕자가 찾는 걸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아서 착한 녀석. 동생 같아. 귀엽다.』
아키라 : …아서 왕자…
스노우 : 아서를 아는가?
아키라 : 아, 아니요… 이 책에 적혀있었어요. 두 분은 아세요?
화이트 : 잘 알고 있지. 아서는 마음씨가 고운 아이야. 전 현자를 많이 신경 써주었어.
아키라 : 어, 어떻게 하면 아서 왕자와 만날 수 있나요?
스노우와 화이트는 눈을 맞추며 웃었다.
스노우 : 아서는 중앙의 왕자란다. 그대가 대신을 따라갔다면 금방 만났을 테지.
화이트 : 대신의 상태는 어떠했는가? *마법관으로 와버려서 화내지 않았나?
아키라 : 화냈어요…
스노우, 화이트 : 그렇겠지.
아키라 : 그리고… 무르가 쥐로 만들어버렸어요.
스노우 : 호호호 엄청 화내고 있겠구나.
화이트 : 인간이 화내봤자 우리는 무섭지 않지만 말이야.
신나 보이는 두 사람을 따라 나도 웃었다. 그리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아키라 : 곁에 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혼란스러워서… 실례되는 행동을 했어요.
스노우 : 괜찮다, 괜찮아. 그대의 마음이 진정됐다면 그걸로 되었어.
화이트 : 우리는 이제 막 만났고, 그대는 이 세계로 막 온 참이지. 불안한 건 당연한 게야.
아키라 : 저…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아서 왕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스노우와 화이트가 서운한 듯이 웃었다.
스노우 : 그런가… 그대가 남아준다면 무엇보다 좋겠지만…
화이트 : 가족과 친구가 그리운 건 당연한 것이지. 아서와 만날 수 있도록 우리도 힘써주겠네.
아키라 : 감사합니다.
스노우 : 카인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구나. 카인은 아서와 같은 중앙의 기사란다.
화이트 : 그 카인도 오늘은 지쳐서 잠들었겠지만. 내일이라도.
아키라 : 카인에게… 알겠습니다.
스노우 : 그대도 쉬도록 해. 현자의 방까지 안내해주겠네.
아키라 : 감사합니다. 저, 이 책, 빌려도 될까요?
화이트 : 현자의 서? 물론이지. 그건 현자의 것이야.
스노우 : 여기가 전 현자가 쓰던 방이란다.
화이트 : 아직 어질러져 있지만 적당히 정리하고 쉬는 게 좋겠구나.
아키라 : 네… 감사합니다.
스노우 : 잘 자렴.
화이트 : 잘 자렴.
아키라 : 안녕히 주무세요.
아키라 : …
혼자 남은 방을 둘러봤다. 생활감이 있는, 누군가가 있었던 느낌이 남아있는 방이다. 쉽게 잠들지 못한 나는 침대 위에서 현자의 서를 펼쳤다.
8화 달을 사랑하여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 남겨놓은 글을 읽고 있으니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전부 다 읽기에는 시간이 걸릴듯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과 아서 왕자의 이름을 찾아서 진지하게 읽어내려갔다.
『아서 왕자에게 부탁했더니 궁정 요리사가 라멘 비슷한 걸 만들어줬다. 넘 맛있어. 살짝 울었다.』
『아서 왕자가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 옛날에는 원래 세계와 이곳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아서 왕자와는 마음이 맞는다. 그 애가 마법관의 마법사였다면 이곳 생활이 좀 더 쾌적했을 텐데. 오즈가 절대 허락하지 않겠지. 아서가 올 때마다 어딘가로 가버리고 절대 마주하지 않는다.』
아키라 : … 오즈와 아서 왕자는 사이가 나쁜가…?
읽다 보니 졸려져서 책을 덮었다. 원래 세계와 이곳을 왕래한 사람이 있어. 이것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방 한구석에서 좋은 허브 냄새가 났다. 창문 밖으로 상냥한 바람 소리가 들리고 눈부실 정도로 밝은 달빛이 들어오고 있다.
아키라 : 커다란 달… 이 세계의 달은 저렇게 크구나… 지면으로 추락할 것 같아…
나는 머지않아 잠이 들었다.
무르 : 아아… 겨우 만났는데. 벌써 헤어져야 한다니 슬퍼. 안녕, 아름다운 그대…
샤일록 : 무르. <거대한 재앙>을 향해 그렇게 애달프게 말하는 사람은 당신뿐일 거예요.
무르 : 샤일록.
샤일록 : 이번 흉사 전부 당신 탓인 건 아닌가요? <거대한 재앙>을 사랑한 이단 마법사 무르.
무르 : …
샤일록 : <거대한 재앙>을 너무 사랑한 탓에 당신의 영혼은 부서져 흩어졌어. 그런데도 또 다시 달을 사랑해버리지.
무르 : 그야 좋은걸! 반짝반짝한게.
샤일록 : …그게 세상을 멸망시킬 흉사로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너무도 애절하게 사랑하니까 저 달도 예년보다 강한 힘으로 이 세상에 가까이 온 걸지도 몰라요. 혹시 당신을 만나러 온 거라면, 당신이 이 세계에서 없어져야 세계가 구원받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이 사실을 다른 마법사들에게 밝힌다면 당신을 처벌하자는 말이 나올지도 몰라요.
무르 : 똑같은 말을 많이 쓰네. 그럴지도 모른다는 게 좋아?
샤일록 : 빈정대는 건가요?
무르 : 빈정은 아침에 먹는 거야?
샤일록 : 고양이 같은 당신도 싫진 않지만, 예전의 당신이 그리워요. 위대한 철학자 무르. 그 생각은 누구보다도 참신하고, 누구보다도 오래된 지식들을 알고 있었죠. 질투 날 정도로 당신은 총명하고 고결했어.
무르 : 그런 것보다, 밤하늘을 올려다봐! 예쁘지?
샤일록 : 저 달을 사랑하는 건 그만두세요.
무르 : 아아, 예쁘네…
샤일록 : 그러면 부서진 영혼이 돌아올지도 몰라요. 부디 세기의 지자여, 달에 끌려가지 말아요.
무르 : 사랑스럽고도 무서운 나의 재앙. 또 만나러 와. 사랑하고 있어, 영원히.
샤일록 : …후후. 설득은 소용없는 짓이었네요.
무르 : 소용없는 짓도 좋아해!
샤일록 : 달변가인 것만은 변하지 않았어. 정말이지, 얄미운 무르.
무르 : 아하하하!
샤일록 : …내일부터 어떻게 되는 걸까요. 잃은 동료들 대신에 도대체 어떤 마법사들이 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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